예전에 한 유저와 대담 중에 흥미로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 "의도적으로 재미없게 만든 것을 게임이라 불러야 할까요?"
게임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바가 크고, 이를 이용한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나온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이 곧 재미는 아니다. 몇 가지 규칙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임과 달리, 재미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을 한다는 시점에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개발자의 의도가 담겨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게임이 재미없다고 평가하는 유저가 존재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오늘은 이에 대해 평소 생각했던 점을 기록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글=유형권(게임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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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을 비롯한 여러 픽션 작품에서 '목숨을 걸고 승부에 임하는 게임'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목숨을 거는데 왜 '게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목숨을 건 승부라는 상황을 '재미'라고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 작품 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악역이 주인공 일행을 함정에 빠뜨리는데 성공할 경우, 필사적으로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주인공 일행의 모습이 악역 입장에서 어떻게 보일까? 즉시 주인공 일행을 죽일 생각 같은 게 아니었다면, 그것은 고통을 주며 즐기는 일종의 유희이자 게임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유희왕 TCG>를 기반으로 한 <유희왕 마스터 듀얼>
결국 재미있게 플레이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공정하지 않은 룰도 바꿔 말하면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는 것이고, 승리했을 때의 보상·패배했을 때의 페널티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는 승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게임이라 인정해야만 게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무언가를 걸고 임하는 승부가 되는가 하면, 누군가에겐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다.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려는 개발자의 의도보다, 주어진 상황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지의 여부가 게임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시로 '도박'이 있다. 짧은 시간내에 거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한순간에 가진 것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위험도 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도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와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의 소중한 돈을 걸고 승부하는 과정을 '재미있는 놀이'라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게임이 되려면, 언제나 마음 속 여유를 남기고 패배의 페널티가 일정 이상을 넘어서는 안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있을 것이다. 도박이 게임과 비슷한 시스템을 여러 개 가지고 있을지언정, 유저들 사이에서 게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게임으로 보지 않는다.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행위에 자신의 재산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출처: 픽사베이)
관점에 따라 재미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할 여지를 만든다.
예를 들어 '항아리 게임'이라 알려져 있는 <게팅 오버 잇 위드 베넷 포디>(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이하 게팅 오버 잇) 는 유저들에게 좌절감을 맛보도록 철저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자그마한 실수도 쉽게 치명상이 되고, 실수하기 전으로 행동을 되돌리는 수동 저장 기능도 지원하지 않는다. 실수하기 쉬운 조악한 조작감 지원과 물리 엔진이 덧붙어 유저들의 심리적 압박감을 극대화시켰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게임을 클리어 할 때의 달성감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 하며 겪는 유저들의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게팅 오버 잇>의 개발자 인터뷰 발언에는 "잘 만든 게임보다는 게임을 만드는 재미 자체를 위해 만들어졌다"라는 문구가 있다. 유저들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재미를 우선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게팅 오버 잇>을를 벤치마킹해 개발된 작품이 여러 개 나올 정도로 이 게임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주어진 수순만 잘 따르면 확실하게 엔딩을 볼 수 있는 고난이도 게임은, 클리어 한 유저가 소수일수록 게임을 '좋아한다, 잘한다, 잘 안다'라는 사회적인 인식을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다 보니, 게임에 즉각적 재미 이상의 도전 욕구를 남겨두는 경우가 있다.
난이도가 높은 게임일수록 유저의 컨트롤을 통해 발생하는 희로애락의 폭도 커지기 쉽기 때문에, 게임 방송을 통해 평소 보기 드물었던 스트리머들의 리액션을 지켜보기 쉬워진다. 의도적으로 재미 요소를 비틀어버린 게임이지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점은 '보는 게임'의 형태로 살아있었던 것이다.
<게팅 오버 잇>은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며 컬트적 관심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만든 이에게 아무런 의도가 없었음에도 유저가 멋대로 재미를 느끼는 놀이가 탄생되기도 한다. 물품을 거래할 때 사용되는 동전이 재미있게 사용되길 바라며 만든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동전 3개로 1:1 동전 축구라는 놀이를 만들어 유행시켰다.
종이학을 접기 위한 종이로 학종이 따먹기 놀이를 유행시키는가 하면, 바둑을 두기 위한 바둑돌 몇개로 알까기 놀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디지털 게임인 <염소 시뮬레이터>는 개발자가 장난 삼아 만든 괴상하게 만든 작품이지만, 폭발적인 유저 반응이 붙어 정식 출시가 되기도 했다.
개발자 스스로도 재미를 확신하지 않은 것을 유저들이 재미있는 게임이라 이해하며 확립시켜준 것이다. 그런 역사가 있기에,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 아무리 의도적으로 재미없게 게임을 만들어도, '나름대로 즐길 수 있었던 게임'이라 말하는 유저들이 있을 것이고, 그 의견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이다.
<염소 시뮬레이터 3>
재미있는 게임의 기억은 개발자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밸런스 안 맞고, 버그가 난무하는 게임 앞에 있어도 유저의 해석과 이용 방법에 따라 게임의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버그의 끝이 어디까지 있을지 탐색하는 재미를 붙이는가 하면, 압도적으로 불리한 밸런스를 컨트롤로 극복한다는 도전 정신을 붙일 수도 있다. 개발자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유저는 가장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을 찾아다니고, 그 과정 속에서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게임'으로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유형권 - 게임 블로거
세상을 살며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게임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으며, 게임 개발사에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자유인으로 블로그를 포함해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