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림이라도 총구가 유저 쪽으로 향하면 불쾌할 수 있으니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바꾸길 권하더라고요. 캐릭터 노출 역시 최근에는 신중히 다루고 있습니다"
깐깐한 검수로 유명한 인기 IP '마블'. 데브캣 스튜디오 <마블 배틀라인> 팀은 이러한 마블과 오랜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트 파트는 매우 꼼꼼한 피드백을 주고 있다는데요.
마블과의 아트 협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마블 배틀라인> 리드 디자이너 이근우 아티스트가 <마블 배틀라인> 아트 어셋 작업 과정과 그 안에서의 고민, 해결 방법에 대해 공유했습니다.
2016년, 업계 전반으로 유명 IP를 사용해 게임을 개발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마블은 코믹스도 있지만 아무래도 대중에게 익숙한 쪽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마블 굿즈 대부분도 영화 속 히어로를 바탕으로 생산되죠.
<마블 배틀라인>은 코믹스 히어로를 바탕으로 한 게임입니다. 글로벌 출시를 염두에 둔 작품이기에, 북미 코믹스 풍 아트를 콘셉트로 잡게 됩니다. 팀은 개발 초기 아티스트 수급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주니어부터 역량있는 시니어까지 다양한 곳에서 섭외를 진행했죠.
하지만 아티스트 섭외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국내에서 북미 코믹스 풍 아트를 구사할 수 있는 아티스트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 아티스트는 해당 사례를 언급하며 프로젝트에 적합한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것 역시 프로젝트 진행에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아티스트는 팀에 합류한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이 모두 달라 '북미 코믹스 풍'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주요 히어로를 작업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간의 통일감은 적고 오히려 개인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했죠.
그는 코믹스 풍의 분위기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미팅에서 들은 마블의 의견에 놀라게 됩니다. 완전한 북미풍 코믹스 스타일이 아닌 아시아권 아트의 미적 감성이 들어가는 편이 좋겠다는 조언이었죠.
덕분에 <마블 배틀라인> 팀은 한결 부담을 덜어낼 수 있게 됩니다. 이후 팀은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단계를 걸쳐 카드를 디자인합니다. 최초 <마블 배틀라인> 카드 디자인은 <마비노기 듀얼> 카드 비율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마블에 덩치가 큰 캐릭터가 많은 만큼 가로 영역을 좀 더 넓게 확장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팀은 색상을 편집하고 음영을 진하게 해 '마블 코믹스'같은 느낌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작은 썸네일로 카드를 봤을 때고 캐릭터가 잘 보이도록 배경 후처리, 검은색만 사용돼 디테일한 묘사가 묻히는 블랙팬서같은 히어로는 간접광을 살려 아트의 디테일이 잘 보일 수 있도록 수정했죠.
<마블 배틀라인> 팀은 마블 코믹스 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되 아티스트 각각의 화풍과 느낌에 맞는 스타일을 정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담당하는 영웅 계열이 생기고 자신의 영역에서 오너쉽을 갖고 작업에 임하게 됐죠.
아이언맨 계열의 메카닉을 그리는 A 아티스트는 평소 애니메이션 풍의 라이트한 캐릭터를 주로 그렸습니다. 이번에 <마블 배틀라인>팀에 합류하면서 평소의 작업 방식은 유지하고 양감을 살려 채색할 수 있도록 스타일에 변화를 줬죠.
B 아티스트는 원색 계열의 컬러가 많이 사용된 역동적인 여성 히어로를 주로 그립니다. 평소 그는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수채화 풍의 그림을 그렸는데요. 해당 파트를 맡으면서 강렬한 컬러를 살리는 것과 동시에 그림을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가장 신경 쓰는 점은 역동적인 표정이라고 하네요.
D 아티스트는 타노스처럼 임팩트 있는 슈퍼 빌런들을 주로 작업했습니다. 묵직한 덩어리감이 느껴지는 빌런을 표현하기 위해 회색 음영으로 그림을 그린 후, 색을 입히는 '글레이징 기법'을 이용하죠.
섬세한 남자 캐릭터를 그리는 E 아티스트는 기존 화풍은 가져가 돼 마블 히어로에 맞게 캐릭터 가독성을 높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간접광을 표현해 캐릭터가 돋보이도록 그림을 개선했죠.
선 보다는 면을 강조하는 F 아티스트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 히어로를 주로 표현합니다. 마블 코믹스 스타일의 히어로를 그리기 위해서는 외곽선으로 정리해 인물의 강렬함을 강조해야 하는데요. 평소 이런 방식의 작업을 하지 않아 처음 작업 방식을 고쳤을 때 많이 힘들었다네요.
'북미 코믹스 풍을 목표로 하되 개개인의 작업 방식은 존중할 것' 이러한 방식의 작업은 북미 코믹스와 동양권 일러스트의 느낌이 더해진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아티스트는 캐릭터 어셋을 합칠 때 이질감을 없앤 사례도 공유했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작업한 캐릭터 이미지는 게임 메인 화면이나 마케팅에도 사용됩니다. 다만 여러 아티스트가 자신의 개성을 살려 작업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작업물을 합쳤을 때 이질감이 생깁니다.
<마블 배틀라인> 팀은 이를 줄이기 위해 캐릭터 배치 후 작업에 공을 들였습니다 색감을 조정하거나 이펙트를 올리는 등 캐릭터 원근 처리와 컬러를 부드럽게 해 통일감을 줄 수 있도록 정돈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스토리의 경우, 코믹스를 기반으로 만들려 했으나 협업 대응 이슈로 인게임 어셋을 활용해 제작됐습니다. 캐릭터 어셋을 활용하고 연출을 넣어 컷신을 만들었죠. 결과적으로 코믹스를 가져와 사용하는 것보다 몰입해 플레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배경의 경우 IP에서 참고할 레퍼런스가 없기 떄문에 표현이 다소 자유로웠습니다. 그래서 <마블 배틀라인>의 배경은 전통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로 작업됐죠.
이 아티스트는 마블의 검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아 놀랐다고 언급했습니다. 어셋 작업을 마치고 출시 직전에 검토하는 것이 아닌, 인게임에 들어갈 모든 아트 어셋을 작업과 동시에 계속 검수받아야 했죠.
물론 검수 절차는 아티스트에 따라 다르지만, 작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 위해선 꾸준히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웃소싱을 통해 작업된 카드는 콘티 단계에서 사전 협의 후 작업에 진행됐는데요. 이 과정에서 피드백을 꼼꼼하게 주고받아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절약됐다고 이 아티스트는 언급했습니다.
아트의 방향성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피드백을 받았는데요. 첫 번째는 캐릭터의 포즈입니다. 카드 제작 초반에는 주로 정적인 자세의 캐릭터 카드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마블에서 좀 더 역동적인 표현을 요구한 후로는 동적인 자세가 늘었다네요.
캐릭터의 표정 표현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령 로키 카드의 경우, 처음에는 무표정으로 주문을 외우는 모습으로 표현됐습니다. 마블은 표정에 캐릭터성을 좀 더 담길 바랐고 아래의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죠.
그 외에도 입체적인 구도, 캐릭터 무기 부각, 동적인 배경, 텍스쳐 표현, 반 실사적인 여성 캐릭터 묘사 등 코믹스 스타일의 느낌을 살리는 데 도움 되는 피드백이 많았다고 합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마블의 신중함이었습니다. 폭발물도 실제 현존하는 폭발물로 느껴지면 안 되며, 캐릭터가 들고 있는 총도 유저를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게 마블의 원칙이었죠. 또한 캐릭터의 노출 역시 극도로 주의 깊게 다루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무리 그림이라도 총구가 유저 쪽으로 향하면 불쾌할 수 있으니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바꾸길 권하더라고요. 캐릭터 노출 역시 최근에는 신중히 다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