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과 <우마무스메>가 세계적 인기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브컬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덕후와 덕질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되고, 덕후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합니다. 이 꼭지는 '덕후의 탄생 배경'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많은 관심과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스카알렛 오하라&디스이즈게임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문화가 집단을 지배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받아들여 자신의 취향으로 삼지는 않아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대중문화에 비순응적이고 본인의 취향을 공고히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열성인자인, 순응적 경향이 낮은 스타일의 사람들은 그 수가 많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해요. 그들 중 일부는 덕후가 되죠.
# 비순응성 + 호기심 + 서브컬처 = 덕후
이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또 달랐어요. 호기심이 크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기와 청년기 동안 교육받은 문화만을 자신의 취향으로 삼았어요. 다른 문화를 찾아보거나 자기 취향이더라도 깊게 파고들려 하지는 않아요.
호기심이 큰 사람들은 자신이 접하는 새로운 문화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요. 그 문화의 대중성에는 신경쓰지 않아요. 자신이 즐겁거나 호기심이 발동하는지가 관건이죠. 소셜 영향력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으니까요. 한번 즐기기 시작한 문화는 더 깊게 파고들어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어 해요.
이들이 접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아 받아들인 것이 대중문화였다면, 덕후가 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는 있지만 덕후가 되지는 않았겠죠. 이들이 접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아 받아들인 것이 서브컬쳐였다면, 이제 덕후의 길을 가게 되는 거예요.
MBC 라디오에서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는 이진우 기자는 상당히 전형적인 덕후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취향이 형성되던 시기에 서브컬처를 접하지 않거나 접했어도 취향에 맞지 않아 덕후가 되지 않는 거예요.
화성을 꿈꾸고 있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등은 덕후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취향이 형성되던 시기에 서브컬처를 접하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덕후가 되었을 거고요.
간단히 아래와 같은 차트로 표현할 수 있어요.
# PC통신과 인터넷으로 본격적인 한국 덕후 문화 탄생
하지만, 덕후의 길은 쉽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외로운 섬이 돼요. 주변 사람과 자신이 다르기 때문에 교류에 만족하기 힘들어요. 인간관계가 주는 만족보다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것이 주는 쾌감이 더 크죠. 그래서 더욱더 자신의 취향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자신과 유사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게 돼요. 유유상종해야 더 풍족하게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니까요. 이 사람들은 어쩌다 자신과 유사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이 가진 정보를 나누죠.
이런 사람의 밀도가 적기 때문에 비슷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장소가 생기게 되죠. 그곳은 용산 전자상가나 국전 같은 곳일 수도 있고, 서점이나 직장일 수도 있어요. 이런 특정 장소가 아니라면 쉽게 자신의 취향을 노출하기 쉽지 않아요.
자신이 즐기는 콘텐츠를 친구나 주변인과 직접 만나 노출했을 때, 그들도 그것을 나처럼 잘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요. 그들은 애초에 호기심이 낮아 큰 흥미를 못 느끼는 경우도 있고 혹은 받아들이는 듯하다가도 결국 대중문화 쪽으로 발길을 되돌리기도 해요. 이들의 문화집단은 성장이 더뎠어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소셜 영향력이 큰 사회에서는 대중문화가 아닌 서브컬처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욱 눈에 띄기 어려웠어요. 이후 ‘양덕의 세계’에서 기술하겠지만, 북미와 유럽에서는 20세기 초중반부터 이미 서브컬처의 존재가 일반인에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서브컬처를 즐기는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도 생겨나고 있었어요.
서브컬처를 즐기는 것이 훨씬 쉽고 즐기는 이들의 밀도도 높았기 때문에, 서로의 눈에 훨씬 잘 띄었던 거죠. 이러한 환경 덕에 코믹북 같은 몇몇 서브컬처는 짧은 시간에 대중문화로 자리잡기도 했어요. (그리고 매카시즘과 CCA(검열위원회)로 또다시 서브컬처화되는 우여곡절을 겪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시기가 매우 늦어지고 있었어요. 서브컬처를 즐기는 이들의 밀도가 낮아 눈에 띄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밀도가 낮으니 즐기는 이들간 교류 기회도 매우 적었으니까요.
이윽고,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이 이 장벽을 허물어 줘요.
1990년대, BBS(PC통신 게시판) 시대를 거쳐 인터넷 시대가 열려요. 이제 물리적 거리를 무시하고 이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게 되었어요. BBS와 인터넷을 통해 그들은 교류하고자 하는 욕구를 촉발시켰죠. 정보가 폭발적으로 오가고, 고도화되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모여 서식하는 곳이 온라인 세계에 만들어졌어요.
이제 그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유유상종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진짜 자신의 취향과 맞는’ 문화를 발견하고, 그것에 심취하고 참여했죠. 그렇게, 우리나라에도 덕후 문화가 탄생할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덕후의 탄생’에 대해 기술해 왔어요. 간단히 정리해 볼게요.
- 문화는 사람의 교류와 함께 성장해요. 교류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주요한 문화로 자리잡는 것이 대중문화예요. 그렇지 못하고 소수에게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 서브컬처죠.
- 문화는 점차 변해요. 대중문화가 서브컬처가 되기도 하고, 서브컬처가 대중문화로 일어서기도 해요. 세대에 따라 집단 내의 문화가 변하기 때문이죠.
- DNA 등 생체적 정보도 세대를 넘어 전달되지만, 문화 역시 사회적 DNA를 통해 전달되고 있어요.
- 사람은 집단 속 관계가 중요한 소셜 영향력과 정보를 파악하는 이성적인 면이 함께 발달해 왔어요.
-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소셜 영향력이 더 강한 환경에서 문화가 발전해 왔어요. 때문에 서브컬처의 존재 자체가 대중적으로 늦게 알려졌어요.
-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서브컬처를 즐기는 이들이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어요.
- 온라인을 중심으로 강력한 덕후 문화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다음 장에서는 덕후라 지칭되는 사람들의 역사와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에 대해 알아보겠어요. 우선, 우리나라에서의 역사로부터 시작해보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