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중금속은 제가 다 마신 것 같아요."
서해 건너온 황사가 봄기운이 완연한 주말을 망쳐놨던 지난 8일과 9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는 '만화인들의 축제' 코믹월드 행사가 열렸다. 코믹월드는 만화를 소재로 동인지를 판매하거나 코스프레 공연 등을 볼 수 있는 문화콘텐츠 관련 국내 최대 행사로 매월마다 열린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개할 때쯤이면 누구나 가슴은 설레인다. 특히 한 달에 한 번씩 예쁜 복장으로 우아하게 치장한 코스프레어들에게 황사는 그야말로 봄의 불청객이다. 오늘 내가 만날 주인공도 주말에 코스프레가 열리는 이 곳에 있었다. 그는 봄을 시샘하는 듯한 황사의 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외에서 황사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코스프레의 열정을 토해냈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하루' 김미리 양(25).
나이는 비록 25살에 불과하지만 코스프레 경력이 벌써 8년차다. '그들만의 놀이'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코스프레에서 긴 시간동안 활동했던 까닭에 그녀는 코스프레로 이색 기사를 꾸미려는 많은 매체로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데 오늘, 그녀의 코스프레 패션이 심상치 않다. 검정색 웨이트리스 복장에 토끼귀 헤어밴드가 왠지 낯익어 보인다. 검정색 바비걸인가? 이런 호기심은 그녀의 롤플레잉(코스프레를 한 캐릭터) 이름을 묻게 된다.
"이 복장은요. 넥슨이 만든 온라인게임 <마비노기>의 술집 종업원 '루아'의 코스튬한 거에요. 실은 코스프레 의상대여업체(날으는 바늘)로부터 협찬받은 거에요. 여기에 이 콘셉으로 함께 준비한 친구들도 4명이나 더 있어요."
가끔 코믹월드에서 <라그나로크>, <마비노기>, <마그나카르타> 등 국산 게임을 소재로 한 코스프레가 등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아직까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 이 때문에 '코스프레어=일빠'라는 섣부른 편견이 등장하기도 한다.
김미리는 게임 캐릭터 코스프레로 유명하다. 일본 인기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코스프레도 있지만 한국 코스프레도 눈에 띈다. 한국 코스프레를 고집스럽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도 '일본문화 마니아'라는 편견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코스프레는 있는 그대로를 따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으로 또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기 나라의 캐릭터를 코스프레하는 나라는 많지 않아요"라며 애써 설명한다.
<마그나카르타>의 저스티나 (사진촬영 : 셀마, //www.selma.pe.kr/ )
<마비노기>의 검교 '발렌시아' (사진촬영 : 아르세느, //mm.dw.am/arsene )
고등학교 '만화' 동아리는 시작으로 그녀와 코스프레에 대한 인연이 이어졌다. 그 동안 코스프레에 참가한 숫자만 하더라도 100회를 훌쩍 뛰어넘는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코스프레의 현장 스케치가 궁금하다면 그녀에게 밀크티 한잔을 권해보길. '밀크티 마니아'인 그녀는 한국 코스프레의 역사의 한 켠에 서 있었다.
김미리는 코스프레 행사장에서도 단연 인기가 높다. 코스프레의 맏언니격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투철한 사명감 때문에?? '화생방' 훈련을 무색케 했다던 행사기간 내내 그녀의 주위에는 항상 사진 작가들이 맴돌았다.
여기저기에서 '하루씨~ 사진 부탁할께요'라고 외쳐대는 사진작가들의 요청이 쏟아진다.
8년의 경력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코스프레 실력은 단연 수준급이다. 그녀는 카메라 반응이 빠르다. 그녀는 사진기의 촛점을 잡는 소리를 듣거나 수동카메라 렌즈의 조리개의 크기를 보면서 사진작가들에게 그녀만의 포즈를 보낸다.
사진 작가들이 그들의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퀄리티 높은 의상보다 캐릭터들을 재창조 아이디어와 모델 못지 않은 세련된 포즈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새단장한 그녀의 홈페이지(haru.ysoya.net)에는 그녀의 코스프레한 모습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래 사진 3장은 무슨 게임의 어떤 캐릭터일까요?>
사진촬영 : 작가 불명
사진촬영 : 범선, //www.kosplay.com
사진촬영 : 덴
김미리는 아직 '마이너리그'에 머물러 있는 코스프레에 대해 하고픈 말이 많단다. 특히 코스프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김미리는 디스이즈게임을 통해 코스프레 연재물을 게재, 코스프레의 전도사가 되기로 했다. 그는 코스프레 상식을 비롯, 경험담 등을 솔직, 담백하게 담아낼 계획이다.
그녀의 코스프레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지막 사진은 코스프레 하지 않은 모습. (사진촬영 : 프로스트, www.mindblu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