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를 통해 한국 모바일게임 산업은 위기이고, 왜 위기에 빠졌는가에 대한 환경적인 이유와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분석해봤다. 너무 짧은 기간 동안 활화산 같은 발전기를 맞이하다가 위기에 처한 현 상황을 극복할 방안이 없는 것일까? 그 문제를 중점적으로 고민해 봤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필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특별한 묘안이 아니라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은 원론적인 방법이 정공법이라 생각한다.
극복방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개발사는 좋은 게임을 만들고, 퍼블리셔는 개발사가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적인 토대를 제공해 주고, 사용자(게임유저)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유저는 게임을 만족스럽게 즐길 것이다’라는 매우 단순한 논리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퍼틸레인 고문 & 한중 게임 전문가 김두일(디스이즈게임 필자 모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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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부의 역할
업체 관계자로서 작금의 한국 모바일게임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가장 먼저 거론하는 게 심히 부끄럽고 안타깝다. 하지만 현 상황은 시장의 자발적인 수습을 기대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고,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다. 개발사, 퍼블리셔 등 이해관계 기업들의 협조와 자발적인 각성으로 유저들의 게임선택 및 소비패턴이 바뀌기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산업 중에서 특별히 게임산업만 육성을 위한 특별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산업만이 특혜를 받을 입장도 아니고 (사실은 교육의 대척 지점으로 몰고 배척이나 안 당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단지 매년 주어진 예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 한국 게임산업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부의 역할은 명확하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육성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고, 그를 위해 합당한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지나친 규제가 있다면 풀어나가고, 해당 산업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부분이 있다면 막으면 된다. 또한, 특정 기업만의 독점적 구조라면 산업 전반의 생태계 구축을 위한 인프라 지원을 통해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면 된다.
말만 들으면 공자님 말씀처럼 원론적으로 옳은 말이고 쉬운 말이다. 그런데 그 원론을 실행하는 것이 참 어렵다. 특히 '어떻게?'라는 세부적인 질문이 들어가면 더욱 어려워지는 내용이기도 하다.
가령 최근 몇 년 동안 게임 관련 지원사업에 사용되었던 예산 중에 '해외 바이어 초청 상담회'라는 것이 있었다. 한국게임의 해외진출 지원을 위해 글로벌 게임 기업(특히 중국기업)의 관계자를 한국에 초청해서 호텔 같은 곳에서 매칭 상담을 통해 수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호텔 등의) 장소 대관, 바이어의 항공권 및 체류 비용뿐만 아니라 심지어 바이어를 위한 한국 관광까지도 포함된 지원사업이었다. 사업 담당자들에게 한류를 활용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였다.
초청받아 오는 기업들은 한국 메이저 회사의 게임을 원하는데, 상담회에 나오는 한국 회사는 주로 중소기업이라 수요자와 공급자의 기본적인 매칭 조건이 맞지 않는다. 맞선도 조건이 맞아야 성사가 되는 것이다. 억지로 등 떠밀려 나온 자리에서 성사 가능성이 몇 %나 되겠는가?
여기에 더 심각했던 것은 이런 지원 사업을 주무기관 한 군데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까지 경쟁하듯 진행하면서 별 의미도 없는 사업을 중복 지원사업으로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논리는 이런 좋은 취지의 정부지원 사업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는데 어느새 중국 사업팀 관계자들 간에 '한국 출장 자비로 가면 호구다'라는 말이 돌았다. '어떤 식으로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지에 대한 공유'를 통해 본인들의 회사업무 혹은 관광목적으로 한국 정부의 지원사업을 악용하는 사례가 이어졌고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한 안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
필자를 포함해서 몇몇 미디어의 꾸준한 제보와 자체적인 효과분석을 통해 다행히 지난해부터는 그런 무의미한 지원 예산은 대부분 삭감됐다.
위의 안 좋은 선례를 들은 이유는 정부가 좋은 정책을 만들고 올바른 예산집행을 하는 것이 의외로 힘들다는 점을 들기 위해서이다. 설령 좋은 취지로 만든 지원사업도 상기 사례처럼 안 좋게 악용될 수 있다. 그런 것을 막고자 하는 노력이 건전한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첫 번째 출발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지난 1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당시 장관 조윤선)가 발표한 2017년 게임산업 업무보고에서 올해 정부는 ▲가상현실(VR)게임 발전 ▲국내 업체의 해외시장 진출 ▲e스포츠 활성화 ▲게임문화 확립 등을 위해 전년 대비 약 55% 증액된 642억 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예산을 편성하는데 실제 필드에서 활동하는 게임산업 전문가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가 궁금했다.
국내 업체의 해외진출이 번역비 지원과 현지 마케팅 집행 비용의 일부 지원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자체적으로 현지 지사의 우수한 번역팀과 마케팅팀을 꾸린 한국의 개발사들은 모두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했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경쟁력 있는 대기업도 결과가 그렇지가 않았다면 좀 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례이긴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해외 지원사업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한국 중소 개발사들이 내놓은 앱들은 80% 이상이 해킹당한다. 그렇게 해킹당한 앱들은 다시 새롭게 포장돼 재출시된다. 대부분 중국을 통해서이다. 해킹한 앱이 오리지널 앱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날 내가 만들어 서비스하는 게임의 사용자가 폭증한다. 접속 IP를 확인하니 대부분 중국발이다. 사용자가 폭증하는데 매출은 그대로다. 이 경우 내 게임은 통째로 해킹을 당한 것이고 중국인들이 별도 결제 혹은 광고를 붙여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한국의 개발사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개발비도 빡빡한 상황에 보안이나 법적 소송에 투자할 돈이 없다. 그래서 소규모 개발사들은 이런 눈 뜨고 도둑맞는 약탈적 현상을 일종의 자연재해처럼 여긴다. 태풍이나 홍수, 메뚜기 떼처럼 말이다.
이 상황을 그냥 재해처럼 여기고 당하고만 있어야 할까? 보안에 대한 지원, 법무적인 지원 방안을 통해 얼마든지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지적재산권 침해의 경우도 비슷한 관점에서 정부의 법무적 지원사업이 가능하다. 해외에서 돈을 벌기보다 해외에서 털리는 매출을 우선 막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과거 정부주도의 게임 지원 사업 중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 사업’이 있다. 필자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정부 사업 중 하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니다. 각 국가에 개별진출이 어려운 온라인게임들을 위해 정부 주도로 통합서버를 제공하고 운영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터키에서부터 유럽 전역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상당한 수익을 냈다.
특히 <실크로드>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메이저 마켓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중동과 유럽을 아우르는 지역에서 대단한 성과를 올리며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한국 온라인게임 사상 가장 많은 국가에서 서비스되고 인기를 끈 게임으로 기억된다.
모바일게임의 서비스 플랫폼은 구글과 애플의 양대 산맥이 있지만, 중국의 경우 난립한 3자마켓이 있다. 한국에서 퍼블리셔를 찾지 못한 개발사들이 직접 중국 진출을 시도하려 해도 수많은 3자마켓에 대한 대응이 힘들다. 최근에는 판호 발급 의무화 등의 규제 이슈까지 나와 가장 넓은 시장인 중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포기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메이저에 들지 못한 중국의 3자마켓들도 최근 생존을 위해 고민하는 터이라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등이 나서서 제휴한다면 한국 게임의 중국 시장 다이렉트 진출도 충분히 논의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서로 윈윈 프로젝트가 될 테니 말이다.
중국에서 법인 설립과 임대 오피스를 지원해 주는 것은 중국 지자체에서도 앞다투어 하는 정책이다. 한국 정부가 굳이 나서서 할 필요는 없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의 연구가 절실하다. 하지만 정책 구성과 예산 편성에 전문가들이 없다 보니 그런 유연한 사고가 어렵다. 해왔던 것을 반복하거나 특정 이슈가 생길 때 단발성으로 지원해 주는 정책이 중심이 된다.
정부의 역할에서 가장 먼저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편성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드에서 활동하는 진짜 전문가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마케팅 예산의 편성에 관한 것이다. 효과도 불분명하고 성과측정도 애매한 해외보다 국내에서 중소 업체 마케팅을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독점적인 몇몇 메이저 회사들의 공습에 전혀 기를 못 펴는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이게 더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현 모바일게임 생태계는 구글 피처드를 받아도 몇만 명 유저 모으기가 힘들 정도로 힘든 경쟁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중소 개발사나 중소 퍼블리셔에게 국내에서 몇만 명씩 모을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을 정부에서 해 준다면 아마 업계에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은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아울러 시장의 독점적 폐해가 있는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도 필요하다. 후발주자들이 힘의 논리에 의해 따라갈 수도, 일어설 수도 없는 구조라면 그건 독점적 폐해에 가깝다. 실제 국내 시장은 몇몇 플레이어들에 의한 독점의 구조가 깊어지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후발 주자에게도 경쟁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정책적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