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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리뷰

뱀서, 하데스에 매운맛 러브크래프트를 섞은 '엘드리치 서바이버'

어쩌면 우린 가벼움에 너무 익숙해진 게 아닐까

김승준(음주도치) 2025-03-19 14:04:18

<뱀파이어 서바이버즈>에 원형을 두고 있는 뱀서류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인상을 갖고 계신가. 기자의 경우 "가볍게 한 판"이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모바일, PC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워낙 많은 뱀서류 신작들이 나오다 보니, 점차 한 번의 플레이 세션 길이와 스트레스는 줄이고 자극적인 쾌감을 좇는 쪽으로 트렌드가 옮겨왔기 때문이다. 이젠 익숙한 맛이 되어버렸지만 뱀서류는 여전히 그 고유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얼리 액세스로 출시된 <엘드리치 서바이버>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2025년에 나온 게임이 맞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보통 나쁜 의미로 쓰일 문장이겠지만, 정확히는 과거로 타임 슬립을 해 게임에 몰입한 듯한 느낌에 더 가까워 사용한 문장이다. 플레이 템포나 스킬에 대한 접근, 재화 활용법 등이 클래식한 맛을 내고 있다. 그 맛이 취향에 맞는지는 한 번 판단해보시기를.


다른 게임들이 화려한 스킬 이펙트와 도파민을 자극하는 성장과 조합 쾌감에 더 집중하고 있다면, <엘드리치 서바이버>는 잔혹함과 긴장감에 더 방점을 뒀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 속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그 중심에 있고, '압도'라는 단어를 게임 플레이 내내 녹여내려 했다는 느낌이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분명 흥미를 가질 유저가 있을 설정과 구성이다.


이번 체험기에서는 <엘드리치 서바이버>가 정확히 어떤 스타일의 게임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적합한 게임일지 써보려 한다. 


비주얼이나 콘셉트는 해외 게임 같지만 국산 게임이다.


엘드리치 서바이버
출시일: 2025-03-13 얼리 액세스 출시, 2025-04-17 정식 출시 예정
개발사: 고스트 버튼
유통사: 고스트 버튼
플랫폼: 스팀
가격: 7,900원 (스팀 얼리 액세스 기준)
장르명: 액션 로그라이크, 슈팅


# 잔혹함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갑작스럽게 찾아온 졸음에 의식을 잃었다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눈을 뜨게 된 주인공 '애비게일'. 새장 같은 공간의 밖엔 '숲'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탈출할 방법을 모색하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숲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다시 새장 같은 온실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다른 인물들이 하나 둘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깊이를 더해간다. 숲에서 괴물을 죽이거나, 꽃을 꺾어 얻어올 수 있는 '빛나는 구슬'을 모아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반복되는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숲에 들어가는 탐색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네이슨, 이상한 기도를 하는 릿사, 두려움에 휩싸인 루터 그리고 주인공 애비게일은 이 타임 루프 안에서 하나의 결말에 반복적으로 도달한다. 인간의 나약한 힘으로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미지의 존재에 의해, 주인공 일행의 존재 자체가 말소되는 것. 이런 과정이 끔찍하게 묘사되는데, 이 결말을 피하기 위해 탈출해야 한다는 명확한 동기부여가 되어준다.


다른 뱀서류 게임들이 내러티브나 스토리, 세계관 묘사에 대한 재미를 배제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엘드리치 서바이버>의 러브크래프트 스타일의 설정은 희소한 동시에 매력적이다. 얼리 액세스 버전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 또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지점이 바로 이런 스토리라인의 차별점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공포. 그리고 미지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기저에 있다.

겨우 나갈 수 있을까 싶었을 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존재가 말소되는 끔찍한 타임루프 안에 그대로 갇혀 있을 것이냐, 괴물이 가득한 숲으로 스스로 나갈 것이냐.
잔혹한 선택만 남게 된다.

반복적으로 도전하게 되는 숲에서의 전투는 뱀서류에서 착안해 온 것이 맞지만, <엘드리치 서바이버>의 곳곳에는 <하데스>에서 영향을 받은 면모들이 많이 보인다. 


그 중 하나가 죽음과 죽음 사이에 대화와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물론 <하데스> 정도의 인물 구성, 대사 다양성, 내러티브의 깊이는 갖추지 못했지만, <엘드리치 서바이버> 나름의 분위기 자체를 구축하는 데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취향에만 맞다면 흥미롭게 볼 만한 설정이 꽤 있는 편이다.



# 매운 건 확실한데 보편적으로 맛있느냐 하면...

<엘드리치 서바이버>는 맵다. 스토리도 맵고, 플레이도 맵다. 신기한 점은, 요즘 맛집이라 불리는 곳들이 다들 짜고 단 맛에 치중할 때, 이들은 슴슴함 속에 매운 맛을 전면 배치했다는 것이다. 


일단, 게임 플레이 방식이 전형적인 뱀서류와는 조금 다르다. 최근 많은 뱀서류 게임들이 '방향 조작'만 남기고, 지향성 공격을 넣어둔다 해도 캐릭터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발사하는 방식을 택한 것과 달리, <엘드리치 서바이버>는 트윈 스틱 슈팅 스타일을 채택했다. 키보드로 WASD 방향 조작을, 마우스로 공격 지향을 조작하는데,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인 '속도'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얼리 액세스 기준 <엘드리치 서바이버>엔 총 4개의 캐릭터와 4개의 무기가 있는데, 캐릭터의 이동 속도, 공격 속도가 모두 느린 편이고, 공격 하나하나가 다른 게임들에 비해 무거운 편이다. 아마 게임을 처음 플레이해보면 왜 기자가 "예전 게임을 하는 듯하다"고 말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템포에 익숙해지면, <엘드리치 서바이버>만의 템포인가 보다-라고 받아들일 순 있지만 초반 플레이가 낯설고 다소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개발진은 게임 플레이에서 이 '속도'라는 요소를 매우 중요하게 배치했다. 가령, 필드는 일반 땅과 험지로 구분되는데, 험지 위에서는 시야가 좁아지고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험지 저항을 강화해야 이런 속도 저하 페널티를 덜 받는 구조다. 숲에 들고 가는 무기 또한 마찬가지로, 도전 중에 20단계까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데, 공격 속도 업그레이드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느껴질 정도다. 


'속도'에 대한 유저 피드백이 많았기 때문에, 개발팀 고스트 버튼은 4월 17일 정식 출시 때까지 "이동 속도를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게 상향하고, 변경된 이동 속도에 맞춰 험지에서의 이동 속도 감소율 등 몇 가지 밸런스를 조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한 번의 도전을 기준으로 초반부 플레이는, 쓸어버리거나 피하며 가로지르고 다닌다는 느낌보다는, 
도망치며 하나씩 처치하는 쪽에 가깝다. 신중한 플레이를 요구하는 편이다.

후반 플레이로 가면서 조금 다른 긴장감의 형태로 변형된다.

요즘 잘 만든 뱀서류들은 어떤 점들을 주로 내세우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스킬'의 강화나 조합에서 오는 도파민 아닐까. 이 지점에서도 <엘드리치 서바이버>는 꽤 클래식한 접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엘드리치 서바이버>에는 일종의 각성 시스템이 있다. 기본 무기, 진행 중 선택하는 스킬 모두 5단계까지 업그레이드를 하면 각성 분화 선택지가 주어진다. 주로 더 넓게, 더 자주, 더 세게 공격하는 스타일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끔 하고 있다. 이런 개별 스타일에 대한 이펙트도 조금씩 다르니 보는 맛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이 조합의 재미가 거의 전무하다는 게 아쉬웠다.


특정 스킬을 배우고 다른 스킬을 함께 배우면 새로운 각성 스킬로 이어진다거나, 특정 캐릭터와 무기의 조합, 특정 무기와 스킬의 조합에서 각기 다른 시너지가 나오게 하는 것은 이미 앞서 출시된 많은 게임들이 보여줬던 장점이다. 그러나 <엘드리치 서바이버>는 이 요소들이 모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다양성을 파헤치는 맛이 부족했다.


4명의 캐릭터만 봐도 그렇다. 누구는 시야가 조금 더 넓고, 누구는 험지 저항이 처음부터 조금 더 높은 식으로 스탯의 차이만 있을 뿐, 플레이 스타일의 차이가 없다.(물론, 이 스탯의 차이가 로그라이크 선지를 고르는 방향성에 영향을 조금씩 주기는 한다) 정식 출시 이후에도 관련 업데이트가 지속될 것인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의 스킬 시스템은 꽤 슴슴한 편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지향하는 플레이 템포 자체가 상대적으로 느리고 하드코어한 난도를 기본에 둬서 그런지,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올라감에 따라 "더 잘 플레이하고 있다"는 감각적 보상감을 느끼는 구조는 꽤 잘 설계된 편이었다. 묵직하고 매운 플레이 또한 템포나 구성은 확연히 다르지만, 명작으로 꼽히는 <10 minutes till dawn>이 떠오르기도 했다. 


스토리에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지만 플레이 스타일의 개성이 없는 편에 가까워 아쉬웠다.

무기도 각자의 개성이 있고, 성장과 도전의 재미는 확실했지만, 조합의 재미가 없다.

스킬 선지 또한 마찬가지다.
뱀서류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매직 서바이벌>에도 이런 조합 각성기가 있었다는 점을 돌아보면 더더욱 그렇다.
뱀서류 스타일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구조라기 보다는, 클래식 RPG에 로그라이크를 더한 느낌이다.


# 진척도의 누적 그리고 재화의 구조


<엘드리치 서바이버>에서 가장 좋았던 요소는 '탐사 보고서'였다. 다른 게임에선 퀘스트를 모아둔 메뉴에 가까운데, 매 도전이 명확하게 누적된다는 감각을 여러 해금 요소와 결합해 확실하게 전달해줬다고 생각한다. 


비슷하게 '유물'을 찾아 돌아오는 방식도 신선하게 느껴졌던 편이다. 다른 뱀서류에서 필드 내 이동은 생존을 위해 아무 방향으로 뛰어가는 수준의 의미만 갖는 반면, <엘드리치 서바이버>는 필드 외곽에 있는 유물을 찾아와야 한다거나, 15분의 제한 시간 내에 비석을 부수고, 마법진 위에서 150마리 이상의 괴물을 처치하는 등 특정 위치로 이동하는 행위를 강조해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든 걸 아우르는 보상 체계와 강화 시스템이 매우 아쉽다. 무기, 마법, 유물을 해금 또는 강화하려면 '빛나는 구슬'이라는 재화가 사용되는데, 한 번의 도전에서 얻는 재화의 양은 필요한 양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다. 숲에서 죽이는 모든 괴물이 다 재화를 떨어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해금하는 순간에는 확실한 확장의 재미를 주지만, 강화에선 수치적 변화만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플레이 경험의 질적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것 또한 아쉽다. (물론, 특정 수치 변화는 플레이 양상을 바꿀 정도로 큰 영향을 주긴 한다.)


마법 해금 및 강화 장면. 몇 퍼센트 확률로 이성 소모를 하지 않는 수치를 바꾸는 강화가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 누적되지 않으면 플레이에서 크게 체감하기 어려운 강화다.
전투에서 이성 및 체력 관리에 대한 부분도 세부적인 수치 조정으로 난이도 조절이 필요해보였다.

유물 해금 및 강화 장면. <하데스>의 유물 시스템과 상당히 흡사하다.
괴물이 찾아올 때까지 시행 횟수를 늘려주는 강화는 매우 유의미한 수치 변화지만,
다른 강화 요소들은 마법 강화와 마찬가지로, 크게 체감하기 어려운 수치 변화가 많다.
필요한 재화를 줄이거나, 수치의 변동폭이라도 더 컸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얼리 액세스 출시 단계이고, 개발진이 정식 출시 단계에선 많은 부분을 개선하겠다 약속했으니, 게임에 대한 평가를 굳히기엔 이른 상황이다.


다만, <엘드리치 서바이버>가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스타일 자체는 확실히 느껴졌다. 다른 뱀서류에 비해 '생존'과 '공포'라는 키워드가 훨씬 더 전면에 내세워져 있고, 다소 무게감 있는 플레이 전개에서 하나하나 쌓아가는 재미를 주고 싶어 보인다. 


세계관이 주는 압도감이나 전투에서 전해지는 공포감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이니, 플레이 전반에서의 난이도 조절 및 스트레스 관리가 급한 과제다. 캐릭터, 무기, 스킬의 조합에서 오는 확장성은 추후 업데이트 등을 통해 만나 봐도 좋을 테니 말이다. 나름의 개성을 가진 게임인 만큼, 더 잘 다듬어진 모습으로 또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뻔한 콘셉트가 아니라서 좋았다. 조금만 더 다듬어지면, 플레이 감각 또한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게임이다.

미지에 대한 공포에 끌리거나, 뻔한 뱀서류가 지겹다면 한 번쯤 플레이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게임이다.
현재 스팀에서 얼리 액세스로 만나볼 수 있으며, 4월 17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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