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에 이어 2025년에도 AI가 산업 전반의 화두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표현하자면 AI 기술이 게임 생태계를 바꾸는 대전환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GPT’와 ‘클로드’는 날이 갈수록 더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있고, 오픈AI의 ‘소라’와 구글 딥마인드의 ‘VEO 2’가 생성해내는 영상 중 일부는 전문가가 직접 촬영한 것이라 주장해도 믿을 만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다. '스테이블 디퓨전'과 같은 이미지 생성 툴의 이름을 안 들어본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운 수준이고, 이젠 콘텐츠 제작을 업으로 하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도 생성형 AI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다.
콘텐츠 제작이 쉬워진다는 것은, 이전에 비용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규모 또는 메카닉 구현을 과함하게 도전해볼 수 있다는 뜻이고, 같은 퀄리티의 게임을 더 적은 인원이 적은 비용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모두가 유튜버, 크리에이터가 되고 나니 진짜 재능 있는 사람들이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것처럼, 개발 허들이 낮아질수록 실패와 성공의 모수도 함께 늘어, 옥석을 가려낼 일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콘텐츠 제작은 어떠한가. 당장 유튜브와 틱톡, 릴스를 보면 AI로 생성된 이미지, 필터, 노래와 TTS로 만들어진 영상이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게임 자체를 생성하는 AI의 발전도 두려울 정도다. ‘지니 1’ 때는 2D 게임을 짧게 생성하는 데 그쳤던 반면, ‘지니 2’에서는 프롬프트 몇 줄로 3D 세계와 장르에 맞는 환경 및 상호작용을 최장 1분까지 생성해내고 있다.
게임 엔진의 양대 산맥인 유니티와 언리얼 또한 AI 기술 개발 및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단순 반복 작업을 줄이고 자동화, 전문화할 수 있는 영역들을 확보하면서, 더 빠르고 효율적인 개발 툴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유니티 6 출시 전후로 유니티 뮤즈, 센티스를 들어보거나 사용해보신 분들이라면 특히 잘 체감하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포트나이트> UEFN,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같이 UGC(유저 제작 콘텐츠)가 중심이 된 플랫폼 단위의 게임들도 AI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UGC 제작에서 며칠이 걸리던 아바타 창작 과정을 AI 도구를 활용하면 몇 분 만에 처리하기도 하고, 16개 언어 장벽을 허무는 AI 자동 채팅 번역을 제공하고, 질의 응답과 코드 설명 등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AI가 어시스턴트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엔씨소프트도 대형언어모델(LLM) 바르코(VARCO)를 비롯한 AI R&D를 꾸준히 해오던 리서치 본부를 엔씨에이아이라는 신설 법인으로 분사하며, 신규 사업 확장에 나섰다. 넥슨의 인텔리전스랩스, 크래프톤 딥러닝 본부, 스마일게이트 AI 센터 등 다양한 기업들이 자연어 처리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한 연구 및 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월드 생성, NPC의 행동 및 대사 처리, 유저와 대결 또는 협동하는 AI 플레이어와 같은 기본적인 영역에서부터 유저 행동 양식 분석, 불법 프로그램 탐지, 마케팅 분석 등 여러 분야에서 AI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
리소스가 많이 필요한 서브컬처 게임 쪽에서도 AI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는 차기작 개발에서 AI 기술을 적극 활용해 개발 중간 단계의 반복작업을 효율화할 것이라 밝히며, 최종 단계의 결과물에선 AI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전하기도 했다.
<블루 아카이브>의 김용하 넥슨게임즈 IO 본부 본부장은 G-CON 2024에서 AI 연구 시도를 발표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AI는 어디까지나 창작자나 개발자를 돕기 위한 '툴' 정도로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기보단, 반복적인 작업을 줄이고 창의력을 서포트하는 관점 정도에서만 도입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4년을 지나오면서 플랫폼 단위에서도 AI를 활용했다는 게임을 적잖게 볼 수 있게 된 것도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였다. 스팀 페이지 하단에는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설명하는 공간이 생겼고, 잇치 아이오에서는 AI로 만들어진 에셋을 따로 태그를 달아 분류해 올려달라는 운영 방침이 생겨나기도 했다.
게임으로 분야를 한정 짓지 않더라도, 2025년 AI 분야에서 가장 주목 받는 키워드는 ‘AI 에이전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영화 <아이언맨> 속 ‘자비스’처럼 사용자를 보조하는 AI를 말한다. 이미 MS의 코파일럿이나 구글 제미나이 같은 상용 제품도 있지만, 더욱 발전된 형태로 생활 깊숙이 들어오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게임에서는 실제 사람처럼 행동하는 AI 파티원이 플레이를 더 풍성하게 해줄 수도 있고, 유저 옆에서 플레이를 보조하거나 훈수를 두는 AI 에이전트도 상상해볼 수 있겠다. AI 에이전트에 다양한 성격을 부여해, 실제 캐릭터와 생동감 있는 대화를 나누고,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도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사례 중 하나다.
전례 없던 AI의 발전 속도를 생각해보면, 기술이 가져올 효율성과 함께 1인 또는 소규모 개발팀의 창의성이 시장에 더 자주 등장할 미래도 예상된다. 게임 업계 안에 있는 크고 작은 규모의 집단들이 어떤 신선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페이크북>을 만든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게임 업계에서 정말 큰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지하게임즈도 <페이크북> 이후로 생산 부분에서나 콘텐츠화 부분에서나 많은 AI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데, 실제로 다른 중소규모 개발팀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최근 급격히 AI 접목을 시도하는 팀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AI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달하고 있어, 다양한 기술 중 어떤 것을 각자의 팀과 프로젝트에 맞게 사용할지 아이디어가 중요한 때다. 특히 유저를 위해 게임 내에서 뭔가를 동적으로 생성하고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기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고 이를 어떻게 재밌고 참신하게 보여주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개발력이나 아트 못지 않게 게임 디자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