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그랑에이지>는 한 편의 동영상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TIG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공개만 됐다 하면 아류작 논란에 휩싸이기 십상이던 2D게임이, 그것도 동영상 하나만으로 주목을 받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게이머들은 <그랑에이지>의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빠른 게임진행, 퍼즐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개발사인 로지웨어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이미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그랑에이지>의 기획을 총괄하는 우상균 PD는 오히려 “아직 보여줄 것이 더 많이 남아있다”고까지 말한다. 아직 클로즈 베타테스트도 하지 않은 개발사치고는 대단한 자신감이다.
물론 자신감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Easy, Speed, 그리고 Funny를 내세우며 말 그대로 ‘쉽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우상균 PD를 만나 아직 공개되지 않은 <그랑에이지>의 야심 찬 목표들을 들어 봤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목표 ① 오버액션으로 2D 액션의 벽을 넘겠다
2D 액션에서 유저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타격감’, 즉 손맛이다. 3D에 비해 캐릭터의 모션이나 이펙트가 확실히 구분되는 ‘직관적인’ 2D 액션 게임은 그만큼 타격감을 살리기에 유리하다. 업데이트가 쉬운 3D그래픽이 나왔는데도 액션만큼은 아직까지 2D그래픽이 대세인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던전앤파이터>나 <메이플스토리> 이후 2D 횡스크롤 온라인게임들이 쏟아지면서 일반적인 2D 액션은 한계에 부딪혔다. 게임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펙트나 연출도 형식의 틀에 갇혔고, 너도나도 타격감을 외치고 나오다 보니 ‘타격감’으로 승부를 보는 것도 어려워졌다.
때문에 로지웨어의 우상균 PD(오른쪽 사진)는 기획 초기부터 차별화를 위해 “말도 안 되게 과장된 오버 액션”을 선택했다고 한다.
캐릭터가 탱크부터 야구선수의 풀스윙, 거대 초밥 등의 갖가지 사물로 빠르게 변신하고, 주변을 폭격하다시피 공격하는, 만화처럼 화끈한 연출로 ‘타격감과 신선함’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공격을 당한 몬스터 역시 피격 모션은 물론 ‘크아악’ ‘키에엑’ 등의 비명소리를 직접 연출로 ‘보여 준다’. 이런 갖가지 애니메이션 효과가 중복으로 나타나면서 <그랑에이지>의 타격감을 한층 끌어올려 준다는 것이 우 PD의 설명이다.
현란한 연속기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그랑에이지>의 차별화 전략(?)이다.
영상 공개 후 애니메이션 효과에 가장 많은 유저들의 호응이 있었다는 우 PD는 “지금 준비된 20종의 애니메이션을 클로즈 베타테스트까지 약 100여종으로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목표 ② 게임의 잔재미를 극대화하겠다
<그랑에이지>의 기본 바탕은 횡스크롤 액션 MORPG다. 마을과 던전 로비를 제외한 모든 공간은 파티원끼리만 공유하는 인스턴스 지역이며, 유저는 월드맵에서 원하는 던전이나 마을을 골라 자동으로 이동할 수 있다. 던전에서는 파티원이 뭉쳐 다양한 함정과 적을 돌파한 후 보스를 쓰러트린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MORPG와 크게 차이가 없다.
흥미로운 부분은 지금부터다. 월드맵에서 원하는 목적지를 고르면 작게 표시된 캐릭터가 길을 따라 이동한다. 그런데 이동 중에는 랜덤으로 적과 조우, 특정한 맵으로 끌려 들어가 전투를 벌이게 된다. 기존의 콘솔 RPG에서 자주 보던 ‘인카운터 시스템’을 MORPG에 접목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번거로울 수도 있는 이런 시스템을 구현한 이유는 뭘까? 우상균 PD는 “콘솔게임 시절의 잔재미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장거리 이동에서 ‘언제 적이 나올까’하는 두근거림을 느끼게 된다.
우 PD는 <그랑에이지>를 설명하며 몇 번이나 “진짜 콘솔게임”이라는 말을 꺼냈다. “콘솔게임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겠다는 온라인게임들은 대부분 타격감과 그래픽에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콘솔게임의 겉모습만을 본뜬 것”이라는 우 PD의 주장이다.
대신 그는 콘솔게임의 진정한 즐거움을 ‘아기자기함과 잔재미’에서 찾았다. 텍스트 하나만 봐도 이야기를 알 수 있도록 정성이 들어있고, 다양한 숨겨진 장치들과 예상치 못 한 이벤트 등을 통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진짜 콘솔게임 같은 온라인게임이라고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랑에이지>에 인카운터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 역시 이런 ‘아기자기함과 잔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다.
던전도 잔재미를 강조하기 위해 곳곳에 숨겨진 다수의 보물상자나 비밀통로, 함정 등을 배치했다. 특정 스킬을 배우지 않으면 획득할 수 없는 곳에 놓여있는 보물상자나 낭떠러지 끝에 놓인 지름길, 이미 알고 있어도 쉽게 갈 수 없는 비밀통로 등 과거 콘솔용 액션 게임을 통해 익숙해진 장치들을 만날 수 있다.
숨겨진 요소의 수도 방대하다. 인터뷰를 위해 우 PD가 시연한 던전의 경우 세 번째 맵인데도 불구하고 보스까지 가는 네 가지 길과 수 십 개의 장치, 십여 개의 보물상자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단순히 생색내기 수준의 퍼즐이나 보물상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맵 곳곳에 있는 숨겨진 장치들.
우상균 PD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발견을 하는 것이야 말로 던전이 갖는 즐거움 중 하나다. 던전 자체가 유저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목표 ③ 재미는 유지하되 진입장벽은 최대한 낮춘다
<그랑에이지>가 목표로 삼은 타깃 연령층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의 로우틴 유저들이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퍼즐과 던전을 강조했다가 자칫 게임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불러오지는 않을까?
우 PD는 퍼즐과 액션이 추가됐다고 해도 <그랑에이지>가 초창기의 <소닉>이나 <록맨>처럼 무자비하게 어려운 난이도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했다. 던전의 다양한 장치를 이용하는 ‘재미’는 살리되 컨트롤에 여유를 줬다는 것이다.
사내 테스트 초기에 점프 난이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중점프를 추가한 것이 대표적인 예. 던전에서도 길을 잃는 경우를 막기 위해 열쇠나 장치조작이 필요한 문 앞에서면 자동으로 필요장치나 열쇠의 위치를 보여 준다. 숨겨진 요소를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하게 오랜 시간 반복해서 도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난이도 이외의 편의성도 고려했다. 레벨이 낮은 지역에서는 인카운트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던전 앞에서는 파티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유저들이 모일 수 있는 로비를 만들었다. 쉽고 쾌적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캐릭터와 몬스터의 충돌판정도 없앴다. 던전 역시 너무 넓다는 지적을 받아 세부 지역별로 잘게 나누었다.
또한, 게임의 특징인 연속기도 일반공격만 연타하면 사용할 수 있고, 연속기와 연속기의 연결도 자유롭다. 심지어 원한다면 ‘버튼 하나’만으로도 대부분의 공격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
우상균 PD는 “<그랑에이지>는 빠르고 쾌적한 게임진행이 특징이다. 퍼즐과 함정 때문에 재미를 느낄 수는 있어도 이로 인해 지나치게 괴로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목표 ④ 컨텐츠가 모자랄 일은 없을 것이다
퍼즐과 던전이 강조된 온라인게임은 언제나 ‘컨텐츠 수급’이 문제였다.
온라인게임은 평균 플레이 시간이 많게는 콘솔용 RPG의 수 십, 수 백 배에 달한다. <그랑에이지>처럼 퍼즐과 함정 위주로 구성된 던전은 반복해서 진행하면 재미가 반감되기 마련이다. 그만큼 컨텐츠의 밀도를 높여야 하는데, 퍼즐과 각종 장치가 뒤섞인 던전을 빠른 시간 내에 ‘찍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우상균 PD는 “컨텐츠에 한해서는 아직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애초에 컨텐츠 수급을 고려해 오랜 시간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자체 툴을 개발했고, 게임에 들어가는 리소스를 최대한 줄일 방법도 모색해 뒀다는 것이다.
<그랑에이지>의 맵 디자인 툴. 모든 것은 마우스 드래그와 수치입력으로 끝난다.
일본산 <RPG 쯔꾸루>를 연상시키는 <그랑에이지>의 자체 툴은 함정이나 타일, 오브젝트 등을 원하는 대로 화면에 끌어다 놓고 배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에 이동속도나 무게, 좌표만 입력하면 곧바로 하나의 장치가 완성된다. 보다 효율적인 맵 디자인을 위해 그 자리에서 캐릭터를 불러 장치를 동작시켜 볼 수도 있다.
우 PD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직관적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유저의 응모를 받아 맵을 만들거나 유저가 게임 내에서 직접 던전을 만드는 UCD(유저 창작 던전)도 고려해 보고 있을 정도”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랑에이지>의 특징인 다양한 변신은 새로운 복장을 만들 때 작업량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2D 게임에서는 복장을 하나 마련할 때마다 각 캐릭터의 모든 동작을 일일이 그려야 하는데 <그랑에이지>에서 아바타를 추가할 때도 변신과 관련된 동작들은 그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랑에이지>는 알파 단계에서 이미 3~10개 가량의 세부 지역이 존재하는 던전을 5개 이상 완성했고, 거대한 마을도 2개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 우상균 PD의 설명이다. 퀘스트도 150개 이상이 준비된 상태이며, 7월 말로 예정된 클로즈 베타테스트에서는 컨텐츠의 규모를 늘려 총 6개의 던전과 3개의 마을을 제공할 예정이다.
‘만에 하나’ 던전이 부족할 사태를 대비해 팀원끼리 일정 맵을 경주하는 배틀레이스나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제거하는 100인 베기 등의 반복형 컨텐츠도 준비했다. 오히려 우 PD는 “던전이나 마을 규모가 지나치게 커서 유저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라며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앞둔 개발자답지 않은 속편한(?) 답변을 남겼다.
오히려 맵이 지나치게 빨리 나오면 텍스트와 스토리가 못 따라갈까 걱정이라고.
■ 2년 이상의 준비, 기획력으로 승부하겠다
<그랑에이지>는 로지웨어의 첫 게임이다.2007년 핵심멤버 4명이 모여서 개발을 시작한 <그랑에이지>는 지난 해 3월부터 시스템을 갖추고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이제는 자체적인 개발툴은 물론 맵과 캐릭터 디자인 등에서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처음 플레이영상이 공개되었을 당시 TIG 댓글에 <메이플스토리> 이야기는 나와도 <악마성 드라큘라> 이야기가 없었다며 내심 섭섭한 표정을 짓던 우상균 PD는 “쉴 새 없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변신 스킬 하나를 기획하더라도 세부적인 동작이나 종류, 포즈와 효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을 정리하느라 어느새 기획서가 산더미 같이 쌓였다는 우상균 PD.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 산더미만큼 남았다는 그의 말만큼 <그랑에이지>가 얼마나 목표를 만족시킬 수 있을 지 기대해 본다.
개발사인 로지웨어의 사무실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