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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창간기획] 한국의 게임 산업 통계는 안녕한가?

매년 나오는 게임백서, 얼마나 믿을 수 있나?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이정엽(이정엽) 2024-03-18 12:47:21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이하 게임백서)가 뒤늦게 발행됐다. 

2022년 통계를 다루고 있는 2023년 백서는 최소한 2023년 말까지는 나왔어야 하지만, 해를 넘긴 2024년 3월이 되어서야 겨우 나오게 되었다. 필자는 그간 몇 년 동안 <게임백서>의 집필진을 맡았던 터라 그동안 생각해 오던 게임 산업 통계 방식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기고= 
이정엽 교수(순천향대학교 한국문화콘텐츠학과), 편집= 김재석 기자

※ 알림 ※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하는 '대한민국 게임백서'에는 다양한 통계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게임백서>는 한국의 게임 산업 전체 정책을 좌우하는 기본적인 통계자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게임 산업 전체 매출액과 사업체 수, 종사자 수, 플랫폼별 성장률, 수출 자료, 게임이용률 등이 망라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게임 산업 전문가의 시장 동향과 분석, 전망이 방대하게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많은 게임사들과 공무원, 언론인, 연구자들이 <게임백서>를 참고하여 사업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연구와 전망을 시도하게 된다. 

이 때문에 <게임백서>의 산업 통계 데이터는 매우 정확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기 때문에, 이 기관을 관장하는 정부 역시 게임 산업의 데이터를 정밀하게 수집하고 다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정확하고 공신력이 있어야 할 게임 산업 통계는 사실 정부가 직접 수집하거나 참여하지 않고, 외주 용역을 통해 진행된다. 현재 <게임백서>에 수록된 게임 산업 통계는 1년에 2번 발간되는 <콘텐츠 산업동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1차적으로 제시되고, 이듬해에 발간되는 <콘텐츠 산업조사>를 통해 확정된다.*​

* 편집자 주: 2024년 발간된 <게임백서>부터는 통계청의 '국가승인통계' 승인을 받아 통계청의 감수 및 보완 요구를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정부가 통계의 작성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으나, 통계청에서 집계에 대한 검수 과정 정도를 거치게 된다. 올해 백서의 발표가 늦어진 주요 원인도 <게임백서>가 '국가승인통계'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설명한다.

현재 <콘텐츠 산업동향 분석 보고서>는 한국갤럽에 위탁해서 집필하고 있으며, <콘텐츠 산업조사>는 '코그니티브컨설팅'이란 회사를 통해 위탁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10년 사이에 데이터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수행사가 여러 번 바뀌었다. 각각의 보고서와 조사들은 매년 위탁사를 선정하는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어떤 위탁사가 선정되는가에 따라 조사 방법론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러한 조사 통계가 처음부터 외주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콘텐츠 산업동향 분석 보고서>의 경우 처음 발간된 2009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내부의 산업분석실에서 책임집필하고, 일부 외부 전문가 필진의 도움을 빌려 발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일부 도움을 받았던 외부 필진이 위탁 형태의 사업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일종의 외주관리 위주 역할만 맡게 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서 업체가 바뀔 때마다 통계 방식도 조금씩 바뀌어 왔다. 예를 들어 게임 산업 전체 매출액의 경우 게임을 포함한 11개 콘텐츠 분야에서 1,500개의 기업을 표본으로 추출하여 가중치를 곱하여 계산하게 된다. 이 때문에 2023년 상반기 조사에서 게임 회사 중 표본으로 산출된 회사는 125개에 불과하게 된다. 이 125개의 기업의 매출액에 가중치를 보정하여 한국 게임 산업의 2023년 상반기 매출액이 추정치로 도출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 산업은 흥행 산업의 특성상 어떤 기업이 표본으로 추출되는가에 따라 그 매출액이 큰 차이를 내포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규모가 작은 인디게임 회사라도 구글 플레이나 스팀 같은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얼마든지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반대로 굉장히 규모가 큰 회사라도 신작이 부재한 상황이어서 매출이 크게 부진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표본 추출 방식은 콘텐츠 산업의 전체 매출을 추정하는 데에 효과적이지 않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운영 중인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의 모습

이 때문에 게임 분야에서도 영화나 공연 분야처럼 통합전산망을 갖추어 게임 산업 분야의 통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나 공연 분야가 이러한 통합전산망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의 티켓 판매 메타데이터가 전산으로 처리되며, 영화관이나 티켓 판매 사이트가 몇몇 대기업의 과점 형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수의 기업 데이터만 수집하더라도 전국 대부분의 영화 및 공연 티켓 매출을 추출해 볼 수 있어 통합전산망을 만들기 수월했다는 장점이 존재했다. 게임 분야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바일게임의 경우 구글, 애플, 원스토어로부터만 데이터를 받는다면 거의 대부분의 매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콘솔 게임의 경우도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의 데이터만으로 거의 대부분의 매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PC 게임 역시 엔씨소프트나 넥슨 같은 대기업의 자체 플랫폼과 스팀, 에픽게임즈 같은 ESR 플랫폼의 데이터만 수집하면 대부분의 매출을 정확하게 추정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 플랫폼과 개발사 및 게임산업협회는 이러한 게임 산업 데이터의 공개가 '영업기밀 누설'이라는 이유를 들어 게임통합전산망의 도입을 반대해 왔다.

그러나 게임통합전산망을 통한 정보 공개가 회사의 영업기밀을 누설하여 전체 산업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2020년부터 이어졌던 팬데믹과 엔데믹 상황에서 영화통합전산망과 공연통합전산망의 공공데이터는 관련 부처와 산하 기관 및 기업들이 재빠르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통합전산망은 연령별, 성별, 지역별 게임 이용 데이터도 수집할 수 있어 학술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이는 게임 회사들과 게임산업협회가 그토록 강조해 왔던 게임의 순기능과 여가 선용을 증명해 내어 향후 게임 질병코드 등재 시에 과학적인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언제까지 국내 게임 산업의 전체 통계를 외주 용역을 통해서 수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인 것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기존의 정책연구팀을 콘텐츠산업정책연구센터로 격상시켜 산하에 데이터 정책팀을 두고 이 분야의 개혁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게임산업통합전산망 수립에는 국회와 정부의 입법화 의지가 필요하며, 산하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의지도 중요하다. 단순한 외주 용역 관리 기관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산업 통계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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