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군의 게임을 탐구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 예술가, 연구자들이 이론서 <사이버 루덴스: 게임의 미학과 문화>(이하 부제 생략)를 발간했다. 이들은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사이버 루덴스: 미래 게이밍, 테크놀로지, 미학의 토포스> 포럼 내용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8명의 필자는 "게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미학적, 문화적, 제도적 전망을 담은 글을 담았다.
제목: 사이버 루덴스: 게임의 미학과 문화(문화과학 이론신서 84)
저자: 이동연, 신현우, 김아영, 서도원, 안가영, 윤태진, 이경혁, 진예원
출판: 문화과학사
초판발행: 2024년 12월 17일
페이지: 263쪽
가격: 22,000원
ISBN: 978-89-97305-25-4 93680
1부 문화코드와 기술미학의 게임 양식
1장. 서드라이프: 포스트 게이밍을 상상하는 예술 미학 (이동연)
2장. 에르고딕, 그리고 대중미학의 인식적 지도그리기: 디지털게임과 컴퓨터-문화 조형행위 (신현우)
2부 루도퍼블릭: 게이머에서 사회적 담론 · 문화로의 확장
3장. 플럭서스: 포스트디지털 문화에 대한 고찰과 개념의 제안 (진예원)
4장. 능동성과 수동성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게이머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고찰 (서도원)
5장. 게임저널리즘과 이용자 공동체는 미디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이경혁)
3부 미디어아트, 플레이 수행성의 새로운 가능성
6장. 광학적 이미지의 황혼, 유령 망막의 여명 속에서 (김아영)
7장. 유희와 노동의 기술법, 랩삐의 <강냉이 털어 국현감> (안가영)
4부 법과 규제, 게임 담론의 제도적 전선
8장. 게임콘텐츠, 규제와 질병 사이: 2000년대 이후 게임 과몰입 규제정책의 변천 과정 (이동연)
9장. 게임포비아의 역설: 한국 게임문화는 어떻게 의료화 되었는가 (윤태진)
<사이버 루덴스: 게임의 미학과 문화>는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포럼 <사이버 루덴스: 미래 게이밍, 테크놀로지, 미학의 토포스>로부터 기획되었다. 이 포럼에서 단행본으로 이어지는 1여 년간의 여정에 게임을 탐구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 예술가,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문화연구—데이터공학—미디어아트—AI—미디어로 연결되는 장대한 학제 간 교류 끝에 8명의 필자가 함께해 『사이버 루덴스: 게임의 미학과 문화』를 출간하였다. 이 책은 게이밍을 인간․사회의 진보를 향한 기술적, 미학적 기획으로 이해하고, ‘호모 루덴스’에서 ‘사이버 루덴스’의 잠재태를 발굴하고자 쓰였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게이밍을 기술과 문화, 미학의 관점에서 다루고자 하는 학술적 시도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임은 미래 기술문화의 토대이자, 장소-공간, 행위자-행위성을 가로지르는 상호작용적인 어셈블리지(assemblage)다. 최초로 게임을 발명한 컴퓨터공학자들은 게이밍을 기술과 인간을 가로지르는 사회적 연대의 실천으로 상상했다.
디지털게임은 단순히 <퐁>이나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유 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그리고 해킹 문화를 창발했다. TV 앞에서, 오락실에서, 그리고 전자 아케이드에서 게임을 즐기던 소년 소녀들은 월드와이드웹과 사이버스페이스를 건설했다. 게이밍은 문화적으로는 ‘디지털 가상’을,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사이버네틱스의 시공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 우리는 게임과 플레이를 단순한 향락이 아니라 주체와 사회를 변환시키는 문화기술 혁명의 대상이자 실천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오늘날 게이밍은 상상력의 자유와 이성의 질서가 결합하고, 예술과 기술의 복잡성이 교차하는 시공간으로 전화한다. 생성AI, 샌드박스, 물리 엔진, 그리고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게이밍은 기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키네틱, 상호작용성, 오픈소스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요소들과 미디어아트를 분리할 수도 없다. 문학과 영화와 마찬가지로 게임은 하나의 미디어이기도 한데, 우리는 게이밍의 독특한 시각․서사․에르고딕(ergodic)의 측면들을 게임 그 자체의 미학으로 탐구해야만 한다. 이에 대한 통섭적이고 교차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는 미래 인간 삶의 합목적적 유희 문화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루덴스>는 이처럼 게이밍을 중심으로 공통 감각이 되어가는 기술과 예술, 그리고 문화의 연결된 직조 구조를 조망한다. 경제․산업적인 프레임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기술적 상상력, 그리고 놀이와 미디어의 생태계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스스로 탐색하고, 건설하며, 자신의 신체와 플레이 공간의 감각을 게임의 질서 속에 연동시킨다.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소위 ‘중독’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미학적 코마 상태이다.
플레이는 사건을 신체화하는 감각인 동시에 주어진 물질과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 파악하는 조형행위에 더 가깝다. 플레이어들은 공간을 탐험하고, 대상들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게임을 둘러싼 “시장 논리․터부”로만 작동되는 권력의 기호계를 역으로 공격한다. 게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민주적 소통과 질서를 추구하고, 동시에 이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배척한다. ‘게임의 룰’은 사회의 계층․인종․성별․지역․세대 등 불균등하게 주어진 사회계약과 다르게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져 있고, 모두가 게임에서 성공할 수 있다. 게이밍은 문화의 원형이자, 민주주의 공동체 안에서 대화를 하기 위한 첫 조건이기도 한 것이다.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이해하고, 구조를 파악하며, 손으로 직접 변화시키는 세계에 대한 감각을 익혀야만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놀이와 소꿉놀이가 물질을 변형하고 창조하는 “월드메이킹(world making)”의 원천이었음을 알고 있다.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게임을 변주하는 모더(moder), 그리고 해커, 예술가들, 그리고 개발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가장 성숙한 ‘플레이어’일 것이다. 이 수많은 플레이어가 쌓은 웃음과 연대의 지층 위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감정 구조에 접속할 수 있을 것이며, 동료들 간의 끈끈한 결속이 어떻게 사회적 연합을 만들어내는지 보게 된다.
놀이하는 뉴런(neuron)은 노동하는 반사신경의 정반대 편에서 신호를 보낸다. 즐거운 게임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적대보다 협상을, 도생보다 협생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준다. 플레이어는 데카르트 좌표계를 벗어나 미래에 우리가 도달해야만 하는 세련된 감각, 더 진보된 기술, 그리고 더 나은 현실을 시뮬레이션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문화코드와 기술미학의 게임 양식”에서는 게임 속에서 기술미학이 재현되는 양식, 그리고 문화적 코드에 대해 살핀다.
1장(이동연, 「서드라이프: 포스트 게이밍을 상상하는 예술 미학」)에서는 가상 개념에서 확장되어, 새로운 삶과 지혜가 펼쳐지는 시공간으로서 게임을 ‘서드라이프’로 파악하고, 현실의 잠재적인 변화소들과 협상하는 동시에 모순과 단절하고자 하는 게임플레이의 문화코드를 이야기한다. 그간 분리된 영역으로 간주했던 과학기술의 경이가 미학적 혁신과 교차하면서 제3의 삶의 공간, ‘서드라이프’가 창발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2장(신현우, 「에르고딕, 그리고 대중미학의 인식적 지도그리기: 디지털게임과 컴퓨터–문화 조형행위」)에서는 게임을 ‘대중미학’인 동시에 게임이 기존의 재현양식들과 차별화하는 독특한 자원을 ‘에르고딕’이라고 정의한다. 대중 미학이자 컴퓨터-문화 조형행위가 된 게임플레이는 게임에 몰두하는 층위를 넘어, 사회구조 모순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어떤 정치를 만들어내는 실천행위로 포착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학적 대중주의의 에르고딕적 양식’이 된 게이밍은 플레이의 미학이 지닌 공통감각, 그리고 컴퓨터-조형행위의 현상학적 실재에 대한 인식적 지도그리기가 완성된다. 1부의 논의들을 통해 우리는 게임의 미학적이고 문화적인(따라서 정치적인) 형태소들을 하나의 추상으로 구획한다.
2부 “루도퍼블릭: 게이머에서 사회적 담론․문화로의 확장”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게임을 더 심층적으로 탐색한다.
3장(진예원, 「플럭서스: 포스트디지털 문화에 대한 고찰과 개념의 제안」)에서는 게이밍 문화를 ‘포스트 디지털 시대의 플럭서스’라 규정하고, 그 대표적인 징후로 청년문화의 주류가 된 이스포츠를 주목한다. 라틴어 어원처럼 ‘끊임없는 흐름과 변화, 움직임’이 된 이스포츠는 게임을 매개로 놀이/향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우리 시대 디지털 풍경을 소묘한다. 이 안에서 플레이어와 이스포츠 팬덤은 미디어 기술의 동학과 결부하면서 느슨하게 흩어진 확장, ‘메타미디엄(meta medium)’ 그 자체가 된다.
4장(서도원, 「능동성과 수동성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게이머의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고찰」)은 이처럼 행위자인 동시에 행위성 그 자체가 된 팬덤․플레이어 공동체가 게임회사․개발자와의 비대칭적 관계를 재정향하는 양상을 탐구한다. 루카치가 소설을 읽는 독자가 누구인지 논하고, 고다르가 관객이 어떤 사람들인지 연구했듯이 ‘게이머’란 누구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새로워진 미디어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을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옮겨오는 게이머들은 단순히 즐기는 자에서 능동적인 입법자로 승급된다.
5장(이경혁, 「게임저널리즘과 이용자 공동체는 미디어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은 이들 게이머가 자아내는 담론구성체의 과정, ‘게임적 저널리즘’을 그려내고 있다. 게임플레이는 단순히 개발자와 이용자가 주고받는 피드백 루프에서 그치지 않는다. 게임플레이는 게임문화를 둘러싼 다양한 헤게모니 쟁투의 장(게임 담론)이자 언어의 질서(비평)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화하는데, 5장은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지형이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들을 자세히 그려낸다.
3부 “미디어아트, 플레이 수행성의 새로운 가능성”에서는 게임과 미디어아트에 깊숙이 상호 침투한 기술적 유희가 논의된다. 실제 게이밍의 테크놀로지를 전유해 작업을 펼치는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3부 집필에 참여했다.
6장(김아영, 「광학적 이미지의 황혼, 유령 망막의 여명 속에서」)은 ‘광학적 미디어의 황혼’의 역사적인 테제로서 게임이 호명되고, ‘포스트 광학적-이미지’를 생성하는 핵심 테크놀로지가 게임의 기술과 결부해 있음을 알려준다. 제4의 벽은 게임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아트의 이종교배 과정에서 재구성된다. VR, 생성AI, 자율주행 자동차 센서 라이다는 인간의 망막을 기계와 합성할 뿐 아니라 게임엔진과 결합하면서 ‘유령 망막’을 생성한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응시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우리는 어떻게 ‘가지고 노는가’? 유령 망막이 펼쳐내는 머신 비전(machine vision)은 인간과 기계,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을 예고한다. 이제 인간 문화의 유한하게 닫힌 집합은 게임 테크놀로지의 중력장 안에서 리믹스와 피드, 그리고 인식 외연의 파열을 시도하게 된다.
7장(안가영, 「유희와 노동의 기술법, 랩삐의 <강냉이 털어 국현감>」)은 그 파열 속에서 대두되는 새로운 개념, ‘플레이버’를 몸소 실천하는 대담한 실험이다. 게이미피케이션, 비물질 노동의 헤게모니 속에서 게임플레이의 물밑을 노동이 배회한다. 자유로운 의식적 활동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 결합하며, 게임의 결과인 보상은 상품과 이중 결합한다. 게임플레이가 생산이자 노동이 되고 게임의 결과물은 화폐이자 상품이 된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결국 놀이를 ‘놀이노동’으로 변환하는데, 7장은 놀이노동을 다시 유쾌한 노동의 즐거움으로 되돌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4부 “법과 규제, 게임 담론의 제도적 전선”은 실질적으로 ‘사이버 루덴스’ 혹은 삶이 곧 예술이자 놀이의 문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도․정책 차원에서 타진, 철저하게 비판한다. ‘중독’ ‘폭력성’의 무한한 루프에 갇힌 게임이 새로운 예술의 언어를 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8장(이동연, 「게임콘텐츠, 규제와 질병 사이: 2000년대 이후 게임 과몰입 규제정책의 변천 과정」)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한 게임의 질병코드화를 ‘의료화’라고 비판하고, 국내의 무질서한 게임 규제(게임중독법) 및 법기술적 규정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 강제적 게임셧다운제의 맹점 및 게임 과몰입을 중독으로 명명하는 언론과 법 기술의 세태가 드러나며, 게임 규제정책이 문화정책을 넘어 사회적 관리 장치로 이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9장(윤태진, 「게임포비아의 역설: 한국 게임문화는 어떻게 의료화 되었는가」)은 한국 사회가 게임을 중독 및 병리로 부르는 독특한 문화적․사회적 맥락을 게임에 대한 사회적 공포, 금기인 ‘게임포비아’로 개념화한다고 예리하게 지적해낸다. 전문가-셀러브리티, 정신의학의 대중화, 그리고 게임포비아의 확산이 하나로 집약되는 지점이 ‘게임의 의료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게임에 대한 규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문화적 향유가 도구적 합리성에 예속되는 상황을 연출하며 사회 지배층의 도덕적 공황을 은폐하고자 하는 시도로 해독된다. 시민사회 차원에서 ‘게임의 의료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이는 미디어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4부는 이야기한다.
『사이버 루덴스: 게임의 미학과 문화』는 게이밍의 기술, 예술, 그리고 자유로운 문화적 실천이 미학적인 기획 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며, 게임을 학술적으로 탐구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