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벗삼아 유유자적 낚시대를 드리우는 낚시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게임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낚시만큼 계륵과도 같은 컨텐츠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낚시가 좋아도 다른 것 없이 오로지 한 자리에만 죽치고 앉아서 낚시만 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좀이 쑤시지 않겠는가.
그래서 보통 낚시는 시뮬레이션이나 롤플레잉 장르의 게임에 서브 콘텐츠 격으로 포함될 때가 많다. 멀리 갈 것 없이 <스타듀 밸리>와 같은 게임에 낚시가 자연스레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낚시를 핵심 소재로 내세운 게임이 없는 건 아니다. 코스믹 호러와 바다 낚시의 조합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던 <드렛지>나 평화로운 낚시에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해 많은 호응을 얻었던 <웹피싱> 같은 사례도 있다. 순수 낚시 게임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잠수를 통해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를 사냥하고 이를 초밥으로 요리해 파는 <데이브 더 다이버> 또한 평가가 좋았다.
코스믹 호러와 바다 낚시의 조합이 참으로 강렬했던 <드렛지>
이렇듯 낚시를 핵심 소재로 내세운 게임들은 순수하게 낚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다른 테마를 함께 끌어들여 게이머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2025년의 시작과 함께 낚시를 핵심으로 내세운 또 다른 게임이 게이머들의 기대를 받았다. 일본식 롤플레잉, 즉 JRPG에 낚시를 도입한 <바다 판타지>(Sea Fantasy)는 그래서 연초의 관심작으로 많이 언급되곤 했다. 물론 그 관심이 좋은 게임성으로 이어지는 건 별개의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쿠타르크(인디게임 블로거)
낚시로 세상을 구하는 낚시 용사의 소박한 대모험을 담은 <바다 판타지>
<바다 판타지>는 세계 최고의 낚시꾼을 목표로 여행을 떠났다가 졸지에 세상을 구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 낚시꾼 로드와 모험가 액셀의 이야기를 담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이다. 픽셀 그래픽과 사운드트랙은 무난한 수준이며, 특유의 인터페이스 구성과 전반적인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와 <포켓몬스터> 시리즈 같은 전통적인 JRPG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엿보인다.
이후 좀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낚시라는 소재를 전통적인 JRPG의 틀에 잘 녹여낸 느낌이다. 여기에 주인공 로드와 친구이자 동료인 액셀을 통해 낚시와 전투를 분리해 놓은 시스템 또한 나름 인상적이다.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번역의 퀄리티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불과 하나의 문장 안에서도 인명이나 지명 같은 고유명사가 제대로 통일돼있지 않고, 반말과 존댓말이 부적절하게 뒤섞여있는 등 한국어 번역이 제대로 다듬어져 있지 않아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다소 혼란을 겪게 된다.
그러니까 시아즈 낚는 낚시꾼이 어쩌다보니 엄청난 시아즈(게임에 등장하는 해양 생물
를 낚아 세상을 구하게 된다는 게임이란 소리다.
별 상관 없는 말이긴 하지만, 초대 교황의 원래 직업은 어부였다고 한다.
스토리 진행 및 자금 획득을 위해서 플레이어는 다양한 구역을 들러 '시아즈'라 불리는 다양한 해양 생물을 낚게 된다. 낚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양 옆으로 움직이는 눈금을 제한된 칸 안에 맞추는 것을 반복해 낚고자 하는 시아즈의 체력을 전부 소모시켜야 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시아즈에게 충분한 대미지를 입히지 못하거나 눈금을 칸 안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반대로 로드가 대미지를 입게 되고, 로드의 체력이 전부 소진되면 그대로 게임 오버로 이어진다. 일단은 움직이는 눈금을 제한된 칸 안에 정확히 맞춰야 하는 동체 시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셈이다.
여기에 로드의 레벨 업과 낚시대와 낚시 바늘, 의상에 따른 스탯 강화에 따라 시아즈에게 입힐 수 있는 대미지가 강해지거나 눈금을 맞춰야 하는 칸이 더 넓어지는 등 로드의 성장 및 강화에 따라 낚시가 한결 수월해진다.
물론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는 오로지 낚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는 대체로 시아즈의 강함에 비례한다. 성장의 중요성이 크게 작용하는지라 어찌보면 전형적인 롤플레잉 게임의 구도라 할 수 있는데, 다른 낚시 게임에서 흔히 봤을 법한 전형적인 낚시 시스템에 JRPG 특유의 성장 시스템을 적절히 도입한 모습이다.
게임상에는 대략 100여 종 이상의 시아즈가 존재한다. 각 시아즈마다 체력과 공격력 뿐만 아니라 눈금이 움직이는 속도나 눈금을 맞춰야 하는 칸의 크기도 조금씩 다르고, 연보라빛 실루엣의 레어급 시아즈는 일반 시아즈에 비해 체력과 공격력이 월등한 데다가 원활한 낚시를 방해하는 특수한 패턴까지 선보인다. 각 시아즈의 개성 넘치는 외형만큼이나 낚을 때의 패턴이 다양해 다양한 시아즈를 접하고 낚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시아즈의 종류도 다양하고 각 시아즈의 외형과 개성도 그럭저럭 괜찮다.
레어급 시아즈는 나름의 특수 패턴도 존재한다. 시아즈마다 이 특수 패턴이 은근히 다양하게 준비돼있다.
모험가 액셀이 본격적으로 동료로 합류하고 나서는 특정 시아즈를 낚는 과정에서 전투와 낚시가 병행되기도 한다. 대개는 액셀이 먼저 시아즈와 전투를 치러 시아즈의 힘을 뺀 뒤 로드가 낚시대를 활용해 물가에 숨어든 시아즈를 낚는 방식인데, 아무래도 낚시의 전초전 격이라 그런지 전투 자체는 다소 가볍게 진행된다.
전투 시 시아즈의 패턴이 다소 단조로울 뿐더러 대처가 어려운 것도 아니라 적당히 맞아가면서 진행해도 큰 문제가 없을 만큼 무난히 풀린다. 어디까지나 낚시가 핵심인 게임이라 전투는 그저 낚시를 보조한다는 느낌에 가깝다. 그나마 전투를 통해 게임의 재미를 다각화시킨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시아즈를 낚을 때마다 해당 시아즈가 지닌 소재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획득한 소재를 상점에 팔아 돈을 벌 수도 있고 낚시대와 낚시바늘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강한 시아즈로부터 확보한 재료로 제작한 낚시대와 낚시바늘이 그만큼 성능 또한 월등하다.
따라서 낚시를 반복해 충분한 양의 소재를 확보하고, 확보한 소재를 활용해 더 높은 성능의 낚시대와 낚시바늘을 제작하고, 이렇게 제작한 낚시대와 낚시바늘을 장비해 능력치를 올려 더 강한 시아즈 낚시를 목표로 하는, 일종의 선순환이 완성된다. 이러나 저러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낚시라는 소재를 강하게 드러내는 게임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런 낚시 일변도의 게임 흐름이 제법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투는 어디까지나 보조에 가깝다. 그 덕분인지 전투 자체는 다소 쉽게 풀리는 편
낚시대와 낚시바늘 재료도 전부 낚시로 수급해야 한다. 이러나 저러나 낚시가 중요한 게임
이렇듯 낚시라는 소재를 JRPG라는 고전적인 장르에 도입한 시도는 제법 흥미롭지만, JRPG의 또 다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세계관과 스토리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다. 일단 게임의 스케일이 다소 작은 편인데, 모든 지역을 방문할 수 있게 되는 후반부 기준으로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도는데 불과 30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세계관이 다소 좁게 형성돼있다. 세계관 뿐만 아니라 메인 스토리도 다소 짧은 편이다.
후반부 시아즈 강함의 급격한 인플레로 인해 주인공 로드의 스펙을 올리는 노가다가 어느 정도 요구되긴 하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단 4시간에서 5시간 정도면 무난히 엔딩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스토리 전개의 대부분은 어딘가 무슨 상황이 벌어지면 앞뒤 설명 없이 그대로 나아가고 보는 식이라 다소 황당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하는 스토리를 내세우는 게임치고는 희한하리만치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아무리 낚시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고 해도 무기력하다고까지 느껴질 만큼 분위기가 너무 평화롭다.
게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스토리의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자연스레 게임을 플레이해야 할 동기 부여도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좀 더 스토리에 공을 들이거나 혹은 낚시를 소재로 한 게임 답게 아예 가벼운 분위기를 추구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저기에 뭐가 있대!" "그래 가 보자!" 이 게임의 스토리는 항상 이런 식이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를 구하는 게임인데 스토리가 너무나도 평화롭다. 다소 무기력할 정도로 말이다.
메인 스토리가 짧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즐길 만한 콘텐츠가 딱히 많지 않다는 건 더 큰 문제라 할 만하다. 메인 스토리 이외의 콘텐츠로는 낚시대 및 낚시바늘 제작과 시아즈 도감 채우기, 황금 개구리 수색하기 정도인데, 황금 개구리 수색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무한 낚시로 귀결될 뿐 딱히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심지어 황금 개구리 수색마저도 21마리의 황금 개구리를 전부 수집하면 끝이라 금방 끝낼 수 있다.
결국 충분한 성능의 낚시대와 낚시바늘을 확보하고 도감을 채운 이후에는 월척에 해당하는 크라운 사이즈의 시아즈를 위해 하염없이 같은 물고기 낚시만 반복하게 된다.
낚시를 반복하다 보면 소재가 충분히 쌓이는 게임이니만큼 개인적으로는 이를 활용한 추가 컨텐츠가 있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이를테면 여러 NPC이 제시하는 서브 퀘스트를 통해 다양한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고, 특정 소재를 조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요리나 공예 같은 서브 콘텐츠도 괜찮았을 듯하다.
스토리 끝내고 장비도 충분히 갖춘 뒤에는 그냥저냥 세월아 네월아 낚시만 반복하게 된다.
쌓인 재료로 뭐라도 더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서브 퀘스트라던가, 요리라던가
<바다 판타지>는 물고기를 낚는 낚시라는 소재를 고전적인 JRPG의 틀에 녹여낸 재기발랄한 시도가 돋보이는 게임이다. 다양한 종류의 시아즈를 낚는 낚시와 레벨업과 장비 제작에 따른 성장 과정은 확실히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나 <포켓몬스터> 시리즈 같은 고전 JRPG의 오마쥬는 아는 이들에게 반갑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무게감이 떨어져 게임의 원동력이 되지 못하는 스토리와 그런 스토리의 몰입도를 더욱 떨어트리는 낮은 퀄리티의 번역, 그리고 낚시라는 소재를 다방면으로 응용하지 못한 서브 컨텐츠의 부재는 아쉬운 점으로 꼽을 만하다. 누구에게나 선뜻 추천하긴 조금 주저할 수밖에 없겠지만, 낚시하는 재미 하나만을 바라본다면 그래도 나름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