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TIG에 올라왔던 <레이시티> 사운드 녹음 현장 기사를 기억하시나요? 온라인 레이싱 게임으로는 최초로 실제 차 소리를 녹음해 화제가 됐었죠. 그 현장에는 녹음을 총괄하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레이시티>에서 음악과 음향 전체를 총괄하는 사운드 디렉터인 고병욱 감독인데요. 그가 <레이시티>에서 꿈꾸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디스이즈게임
고병욱 감독, 그는 누구인가?
고병욱 음악 감독은 <YMCA 야구단>, <원더풀데이즈>, <밀애>,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 <네오스팀>,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등의 각종 게임 프로모션 무비, 그리고 <제라>, <건스터>, <라이딩스타>, <팡팡테리블> 등의 게임 음악과 음향을 담당했고 지금은 <레이시티>의 사운드 분야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
TIG> 약력을 보니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는데 어떻게 음악의 길로 나서게 됐나요?
대학교 1학년때 선배에게 이끌려 ‘상투스 코러스’라는 음악 서클에 가입하면서 음악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 후 상투스 선배이자 한국 영화 사운드의 대부라 불리는 ‘블루캡 사운드’의 김석원 사장의 영향을 받아 음향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하게 됐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음향 공부를 계속 하던 중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대학원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게 됐고 종교 음악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해 미국에서 쭉 살았어요. 그런데 점차 미국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 음향 제작 활동을 하게 됐어요.
TIG> 영화 음악과 게임 음악 중 어떤 것이 더 어렵나요?
게임이 어려워요. 영화 음악은 제작하면 20~25곡 사이를 만드는데 그 중에서 5~6곡을 중심으로 주 테마를 조금씩 변형하며 만들죠. 따라서 작곡 자체가 메인 테마를 잡는 것이 힘들지, 그것이 잡히면 쉽게 제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아요. 거의 한 게임에 3~4 장르의 음악을 섞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죠. 그나마 <레이시티>는 테마를 락으로 했기 때문에 통일이 쉬운 편이에요.
음악이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일부 영화들 뿐, 대부분의 영화들은 음악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게 현실입니다.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개발사들은 음악에 매우 신경쓰고 있고 요즘은 투자도 많아지고 있어요.
TIG> 다양한 게임 음악들을 만들어왔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제라>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음악 제작을 위해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는 체코에 가고 영화 <물랑루즈>, <라이온킹>의 음악을 믹싱한 ‘제프 호스터’와 함께 영국에서 1주일간 믹싱을 했었는데요.
체코에는 약 1주일 정도 있었는데 밖에 나가서 구경한 게 점심 먹으러 나갈 때 2번 뿐이었어요. 나머지 시간은 전부 스튜디오에 콕 박혀 있었죠. 그때가 참 행복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TIG> 이번 엔진음 녹음 작업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게임에 들어가는 사운드 이펙트는 솔직히 대충 만들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따오든, 라이브러리에서 빼내든,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N모사의 S게임의 초기 작업도 진행했었는데 그땐 이런 생각을 못했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사운드 라이브러리에 보면 자동차 효과음이 엄청 많습니다. 그렇지만 게임의 루핑(반복)으로 적용해서 맞을만한 사운드가 거의 없어요. 중간에 변질되는 효과음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리얼한 배경과 차량이 나오는 게임에서 사운드가 리얼하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처음엔 “<그란투리스모>도 녹음했다는데 우리도 할까? 해보지 뭐!”라는 농담조로 시작했죠.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혹시 모르니 알아나보자’라는 식으로 현대자동차 연구소에 출입하는 친구에게 문의해보니 이게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업을 시행하게 됐어요.
게임 유저들이 보고 즐기고 느끼고 듣는 부분 중 레이싱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듣는 부분에서 혁신적인 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게임의 이펙트 사운드를 만들면서 이런 정성을 들인 곳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드네요.
여러 방면에서 완성도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걸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요. 물론 가장 큰 목적은 <레이시티>의 사운드가 좋아지는 것이고요.
TIG> 레이시티에서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것인가요?
레이시티의 음악은 주로 밴드들이 만들고 있는데 작곡 단계부터 관여하고 있어요. 작곡은 물론 연습할 때도 연습장에서 밴드와 며칠씩 살곤 하죠. 그럴 때 이들에게 전 이렇게 주문을 합니다. “네가 캘리포니아 해변을 스포츠카를 몰고 막 달릴 때 듣고 싶은 음악이 뭐냐? 신나고 아름다운 기분, 그걸 표현해봐라.” 라고 말이죠.
그리고 완성도가 높은 음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게임을 위한 음악보다는 게임을 살리면서 음악 자체로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거죠. 기본적은 장르는 락이고, 젊은이들이 신나서 따라부를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하고 있어요.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가사가 모두 영어라는 겁니다. 방경민 사장과 제가 번갈아가면서 가사를 짓고 있는데 덕분에 아주 미칠 지경입니다. ^^;
TIG> J2M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J2M이라기 보다는 방경민 대표와 박종흠 이사를 만난 건데요. 넥슨에 있을 때부터 알았습니다. 제가 <제라>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었을 때 당시 <제라> 팀장이 ‘사운드 외주를 준 곳이 일 참 잘 한다’며 사내 메일로 뿌려버렸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었죠.
그 당시 방경민 대표는 스포츠게임을, 박종흠 이사는 차세대 콘솔 게임을 제작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는데 두 분이 번갈아가면서 잘 해보자고 기대를 한껏 심어주더니 얼마 뒤 두 분이 회사를 나가버리시더라고요. ^^;
그 뒤 나중에 연락이 다시 왔는데 그게 바로 J2M이었고요. 그래서 두 분과 의기투합해 진짜 제대로 된 사운드를 만들어보자고 다짐했죠.
TIG>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제가 영화 사운드계를 떠나 게임에 뛰어든 건 어찌 보면 모험을 걸은 거에요. 영화 사운드는 크게 돈은 안되지만 굉장한 보람과 명예가 주어지거든요.
하지만 게임 사운드는 영화 사운드만큼 돈과 명예가 따라오지 않는게 현실이에요. 음악을 뺀 한국 영화 사운드 시장 규모가 1년에 30억원이 안돼요. 하지만 게임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은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게임이 모든 엔터테인먼트의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겁니다. 그래서 게임을 알고 게임의 문화적 코드를 접하고 만들어가는 역할을 해보자는 게 계획이고요. 게임을 통해서 번 돈으로 뮤지컬 등의 무대 쪽으로 나가보고 싶어요.
지금 <레이시티>에는 제라에 쏟았던 노력의 10배를 쏟고 있어요. <레이시티>를 통해서 내가 게임에서 가질 수 없었던 큰 보람을 갖자는 것이 지금의 목표이자 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