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같은 것을 개발해 볼 수 없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유독 주목을 받은 게임기가 있습니다. 바로 오는 4월 30일 발매되는 게임파크홀딩스의 ‘GP2X Wiz’(이하 Wiz)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시기가 맞물리는 국산 휴대용 게임기라는 점 때문에, 본의 아니게 ‘명텐도’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바로 그 게임기입니다.
그렇다면 Wiz를 만든 게임파크홀딩스는 자신들의 게임기가 ‘명텐도’란 별명을 얻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리고 휴대용 게임 시장에 세 차례 넘게 도전장을 던진 게임파크홀딩스의 생존전략은 무엇일까요?
Wiz의 마케팅을 총괄하는 게임파크홀딩스의 박상훈 이사를 만나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현남일 기자
게임파크홀딩스 박상훈 이사.
Wiz, 대통령 때문에 만든 게임기 아니다 |
TIG> 대통령의 발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상훈 이사: 정말 예상 치도 못했다. 대통령 덕분에 게임기가 정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출시를 앞둔 시기에 홍보에 많은 도움됐다는 점에서는 개인적으로는 감사하고 있다.(웃음) 하지만 이 자리를 통해 확실하게 말하고 싶다. Wiz는 ‘명텐도’하고는 거리를 두고 싶다.
Wiz는 2년 전인 2007년 하반기에 이미 기획에 착수했다. 작년 12월에는 제품 발표회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iz가 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시류를 타고 급조된 제품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우리가 어떠한 아픔과 고난을 겪어 여기까지 왔는 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정말 많이 아쉽다.
‘명텐도’로 불리는 게 싫다기보다는 가능하면 ‘GP2X Wiz’, 혹은 ‘위즈’ 같은 제품명을 정확하게 불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TIG>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회사의 분위기는 어땠나?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다짜고짜 “정부한테서 지원받은 것이나 특혜 받은 것 없죠?”라고 물어 보는 언론 매체도 있었고, 이른바 정부가 키워주는 산업으로 알고 대놓고 ‘묻지마 투자’를 하겠다는 연락도 있었다. 우리는 겨우 게임기를 제작하는 회사다. 그렇기에 정부에 특혜는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거액의 투자를 받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다들 그저 무덤덤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회사의 부담도 굉장히 커졌다.
우리는 작은 기업이다. 하물며 닌텐도하고 1대 1로 대결하는 것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규모가 작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닌텐도나 닌텐도DS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니. 다들 바짝 긴장하고 있다.
TIG> 어찌 됐든 널리 알려진 만큼, 제품 판매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Wiz의 정식 발매일은 4월 30일이다.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판매에 직접적으로 도움됐는지를 판단하긴 아직 이르다.
하지만 4월 중순부터 진행된 예약판매 결과를 보자면, 신규 고객들이 늘어나는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제품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구매로까지 이어진 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TIG> 최근 정부에서 휴대용 게임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선 정부에서 휴대용 게임 산업에 관심을 보여준 것은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휴대용 게임기를 비롯한 게임 제작사들이 정부의 정책에 따라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게임사들이 안정적으로 컨텐츠. 즉 ‘휴대용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토양을 깔아 주었으면 한다.
국내 게임회사들이 휴대용 게임을 활발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당장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서도 위험부담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정책적으로 이끌어 ‘도전할 가치가 있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다면 많은 회사가 휴대용 게임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유저가 게임을 만드는 UCG 게임기 |
TIG> 현재 국내 휴대용 게임기 시장은 이미 닌텐도DS와 PSP가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Wiz만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궁금하다.
마케팅 원칙 중에 'No.1이 있는 시장에 절대 뛰어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Wiz를 그냥 단순 휴대용 게임기라고 하는 순간, 우리는 죽을 때까지 닌텐도를 이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닌텐도와 Wiz를 비교한다. 하지만 닌텐도와 경쟁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우리 목적은 닌텐도 시장을 뺏어 오거나, 그 시장에 자리잡는 게 아니다.
휴대용 게임기이지만 닌텐도와는 다른, 우리만의 시장을 개척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TIG> 구체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설명해 달라.
Wiz의 기본적인 모토는 “한국에도 휴대용 게임기가 있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런 모토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여 주는 ‘개발자 시장’을 상반기에 노릴 것이다.
단순하게 개발자들을 위한 홍보와 프로모션만 진행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게임 개발 대회와 같은 여러 행사를 계획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 툴킷(SDK)도 배포할 계획이다. 또 개발자와 하드웨어에 관심 있는 커뮤니티도 집중해서 공략할 것이다.
TIG> 게임 개발에 관심이 많은 ‘개발자 지망생’나 ‘현직 개발자’를 주요 타깃층으로 삼겠다는 뜻인가?
일반 대중을 우리의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정말 아쉽게도 현재 준비하고 다양한 게임들이 하반기에 몰려서 발매될 예정이다.
때문에 일단 출시 초기인 상반기에는 개발자 지망생이나 아마추어 개발자, 현업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게임의 마케팅을 펼칠 계획이다.
Wiz는 유저가 직접 게임을 만든다는 ‘UCG(User Create Game) 게임기’를 표방한다. 게임은 꼭 플레이 하는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화려한 그래픽, 엄청난 사운드보다 자신만의 기획,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Wiz로 ‘게임을 만드는 즐거움’을 주고 싶다.
TIG> 그렇다면 Wiz용 게임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줄 생각인가?
기본적으로는 게임 개발을 도와 주는 SDK와 게임 개발 가이드가 제공된다.
비록 지금은 ‘SDK’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모자란 라이브러리 모음집 수준이지만, 지속적으로 버전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Wiz용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애플의 앱스토어(App Store)와 같은 형태의 오픈 스토어를 올해 6월에 오픈할 예정이다. 전 세계 유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픈 스토어로, 개발자들은 자신의 게임을 더 쉽게 ‘전 세계’에 배포할 수 있다. 물론 일정한 수익도 거둘 수 있다.
TIG> Wiz는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Wiz의 이전 모델인 ‘GP2X F100’와 ‘F200’가 유럽에서만 6만 대 가까이 팔렸다. 해외에서도 아마추어 개발자들이나 개인 시간을 투자해 자작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유명 개발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Wiz 역시 그런 재야 고수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내에 20종 넘는 게임을 선보인다 |
TIG> 게임파크홀딩스는 지금까지 다양한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었지만, 사실 국내에서의 성과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역시나 ‘컨텐츠’ 부분이 뼈 아팠다.
Wiz 이전 GP2X F-100이나 F-200은 많은 게임을 선보이지 못했다. 개발에 관심이 많은 하드코어 유저들 입장에서 이 부분은 크게 상관이 없지만,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는 치명타이지 않았나 싶다.
Wiz는 다양한 컨텐츠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최근에 <그녀의 기사단>과 <혈십자> 등을 만들었던 ‘도그마-G’를 내부 개발 스튜디오(퍼스트 파티)로 인수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TIG>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올해 몇 종의 게임을 선보일 예정인가?
자체 개발, 서드파티 게임을 포함해 올해 내로 20~30여 종의 게임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다만, 여러 가지 아쉬운 문제로 인해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게임들을 선보일 수 있을 듯하다. 일단 출시 초기에는 약 10여 종의 내장 게임들과 2~4 종의 외부 게임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TIG> 서드파티가 만드는 게임은 얼마나 되는가?
현재 10여 종의 게임이 서드파티에서 개발되고 있다. 아직 게임들과 서드파티의 정보를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올해 하반기 전에 구체적인 윤곽이 잡힐 것이다. 확실한 것은 3D 그래픽을 잔뜩 쓴 PSP 게임에는 미치지 못 해도, 닌텐도DS 게임에는 뒤쳐지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 줄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 나올 출시 예정 게임들.
TIG> 혹시 모바일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와의 연계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단계에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Wiz용으로 발매되는 게임은 가능한 오리지널 타이틀들을 선보일 생각이다.
TIG> Wiz는 ‘멀티미디어 기기’로서의 성능도 갖추고 있다. 굳이 ‘게임기’라는 포지션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GP32를 만들었던 게임파크 시절부터 굉장히 오랫동안 휴대용 게임기를 만들었다.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 했음에도 지금까지 계속 휴대용 게임기를 개발하는 것은 그만큼 이 시장에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게임파크홀딩스는 ‘게임기 메이커’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나갈 것이다.
우리는 국내에도 휴대용 게임기 산업이 존재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 비록 현재 국내 게임시장은 온라인 게임의 비중이 압도적이라고 할 정도로 높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비디오 게임과 휴대용 게임 시장의 비중이 매우 높다.
휴대용 게임의 가능성을 믿고 앞으로도 좋은 제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