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회사 중 미국에 지사를 처음 만든 업체는 넥슨입니다. 무려 12년 전(1997년 7월)이었죠. 미국은 물론 국내에도 온라인게임이라는 ‘개념’이 낯설던 시기였습니다. 젊은 패기였으니까 가능했을 겁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 세워진 넥슨의 미국 법인은 2004년 문을 닫았습니다. 온라인 RTS 게임 <택티컬 커맨더스(Shattered Galaxy)> 등 의욕적으로 벌인 미국 사업이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니까요.
권토중래. 넥슨은 2006년 <메이플스토리>를 앞세워 다시 미국 땅을 밟습니다. 이전부터 시작했던 <메이플스토리>의 글로벌 서비스가 태평양 건너에서 꽤 잘 됐거든요. 2007년에는 아예 북미 개발 스튜디오까지 열었습니다. 바이어컴과의 제휴, 알렉스 가든 등 북미 개발자 영입과 연결되는 완벽한 공격 모드.
그러나 올해 초 갑작스런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북미 (개발) 스튜디오 폐쇄.
안 들르고 배길 수 있어야죠.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를 거쳐 LA로 갔습니다. 넥슨 아메리카의 박수민 부법인장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고 왔습니다. /LA(미국)=디스이즈게임 임상훈 기자
TIG> 미국에 다시 오게 된 배경은?
박수민 부법인장: <메이플스토리>는 한국에서도 그렇듯, 해외에서도 늘 성공했다. 글로벌 서비스를 상용화한 것이 2005년 11월이다. 한국에 서버를 두고 원격으로 서비스를 했는데, 미국에서도 꽤 좋은 성과가 나왔다. 그런데 동시접속자에 비해 매출이 높게 나오지 않았다. 미국 유저들은 한국에 비해 다소 연령이 높았지만, 신용카드 외에 결제 방법이 없었으니까. 모바일 결제는 최소 40%의 수수료를 낼 정도로 비싸서 시도를 할 수도 없었고, 소액 결제를 위한 다른 방법도 없었다. 이런 어려움들을 해결하고, 좀더 본격적으로 미국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건너왔다.
TIG> 결제 문제를 선불카드를 통해 풀었는데.
2006년 1월 미국에서 <메이플스토리> 선불카드 유통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사실 전체 선불카드 시장의 90% 이상은 전화 카드다. 컨텐츠 쪽 선불카드도 음악 쪽이 대부분이다. EA나 니켈로디언 등에서도 선불카드를 냈지만,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넥슨도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 선불카드 업체인 ‘인컴’을 통해 유통망을 뚫으려 했는데 아무도 안 만나줬다. 그래서 ‘타깃’(Target)을 직접 찾아가서 설명하고 설득했다. 다행히 ‘타깃’이 믿어줘, 이 곳에서부터 처음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판매 첫날부터 물량이 매진됐다. 더 많은 물량을 다시 주문했는데 이것도 일 주일 만에 매진됐다. 지금은 아이튠스 제외한 컨텐츠 관련 선불카드 중 판매 1위다. 아이튠스를 제외하고, 나머지 컨텐츠 관련 선불카드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팔린다. 해외 미군 기지까지 들어가 있다.
덕분에 2007년에 약 2,930만 달러(약 272억 원/07년 기준환율: 929.20)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해에는 20~30% 정도 성장했다.
(※ 타깃은 세계 최대 소매 유통 체인인 월마트와 라이벌 회사입니다. 지난 해 Fortune 500 순위에서 31위에 올랐죠. 특히 선불카드 분야에서는 판매량과 매출액 모두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현재 넥슨의 선불카드는 북미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TIG> 연령이나 성향 면에서 <메이플스토리> 북미 유저층이 한국과 차이가 있는가?
연령대는 조금 높은 편이다. 13~18세 또는 24세 사이에 해당하는 층이 훨씬 많다. 남녀 비중이 거의 비슷하다. 취향은 거의 비슷한 것 같은데, 마이스페이스에서 사진을 보면 의외로 연령대가 높고, 아동적인 것보다는 성인적인 분위기가 많다.
미국에는 1998년 제정된 COPPA라는 연방법이 있다. 게임등급과 다른 것인데, 온라인에서 13세 미만 어린이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규정이다. 이를테면 13세 미만이 가입 가능한 게임이나 사이트에서,
“너 몇 살이니?” / “아홉 살”
“어디 살아?” / “LA”
이런 채팅이 가능하면 COPPA의 규정에 어긋난다. 아예 채팅 기능을 삭제하거나, 채팅에 쓸 수 있는 단어들을 선택하는 식으로 보호 장치가 있어야 한다.
<메이플스토리>에는 이런 보호 장치가 안 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원칙상 13세 이하를 받지 않고 있다. (※ 회원가입 시, 13세 미만으로 선택할 경우 게임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입 과정에서 유저의 실제 나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없다.)
TIG> 동양적인 요소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대부분의 유저가 아시아계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게임이 다소 동양적인 느낌이 많아 걱정했는데, 일본계 애니메이션과 만화 등이 미국 문화의 주류에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크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마비노기>도 그런 종류의 동양적 느낌이 나지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원래 <메이플스토리>는 아시아계가 50%에 육박할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처음엔 ‘아시아계 게임’으로 굳어지는 게 아닐까 우려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은 많이 다르다. 다양한 인종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초기에 구전홍보를 하는 데 있어 아시아계 유저들의 역할이 당연히 크다. 모국의 친구가 즐겼거나, 그곳에서 게임을 했던 유저가 초반에는 많으니까. 커뮤니티를 이끄는 유저들은 아시아계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북미 서비스 4주년 기념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TIG> <메이플스토리> 성공 이후 북미에서 넥슨의 인지도는 많이 올라갔나?
게임 산업 쪽에서는 대부분 알고 있다. 많이 만나고 싶어한다. 아이템 판매 모델에 관해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는 한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궁금해 했다면 최근에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궁금해 한다.
하지만 게임과 관련 없는 큰 업체와 무언가 같이 하려고 하면 아직은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TIG> <컴뱃암즈>가 북미 FPS 중에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지난 겨울 동시접속자수가 2만 후반까지 올라갔다. 방학이 끝나 좀 줄었지만 지금도 2만 이상 하고 있다.
넥슨에게는 큰 도전이었던 게임이다. 보통 미국에서 퍼블리싱 할 때는 1~2년 이상 된 게임을 했는데, <컴뱃암즈>는 한국에서 오픈베타를 할 때 북미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다. 서두른 이유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3년 전 이미 <워록>(K2 Network)이 나왔고, <스페셜포스>(NHN USA)도 동접 1만 이상 선전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이후 다른 FPS 게임들도 북미에 많이 나오려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얼른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카운터스트라이크 온라인>과 비슷한 시기에 나와 선택과 집중이 어려웠다. 또 <서든어택>보다 그래픽이 좋고, 맵, 무기 장착시스템 등도 낫다고 판단했지만, 이 정도로 <서든어택>의 유저를 데려오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아직 <서든어택>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기존 다른 FPS 게임들이 좀 오래됐거나, 하드코어하거나, 버그 문제가 있어서, <서든어택> 스타일로 왕좌를 차지한 게임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보다 먼저 얼른 치고 나갔다.
북미 온라인 FPS 게임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컴뱃암즈>.
TIG> 타이밍이 맞았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개발 쪽에서 더 미국에 포커스를 맞춰 줬다. 한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 으레 그렇듯 중국, 대만 식으로 나갔을 테고, 미국은 우선순위 밀렸을 텐데, 오히려 서비스 초기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줬고, 덕분에 미국에 맞게 로컬라이제이션이 많이 이뤄졌다.
최초로 여성 캐릭터가 들어갔고, 흑인 캐릭터도 등장했다. 미국 FPS 게임 중에 흑인이 등장하는 게 거의 없었다. (※ 참고로 북미에서 ‘흑인 캐릭터가 나왔다’ 식으로 마케팅을 하면 안 된다. 흑인이 게임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특별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흑인(African American)들에게는 인종차별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흑인 캐릭터의 특성을 '운동과 랩을 좋아한다' 식으로 묘사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흑인은 머리는 안 좋고, 운동만 좋아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니까.)
또 4월 1일부터는 넛샷(Nut Shot)도 추가했다. FPS에서는 항상 헤드샷이 최고였는데, ‘거기’를 맞추면 호두가 깨지면서 다람쥐 표시가 뜨고, 더 높은 포인트를 준다. 이런 요소들은 단순한 로컬라이제이션이 아니고, 컬추럴라이제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사막에 가서 진짜 총 쏘면서 사운드 녹음을 할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다. 오히려 실제 같은 느낌은 떨어지더라.^^;;
넛샷 작렬!
TIG> 상대적으로 북미에서는 FPS 장르가 잘 되고 있는데.
맞다. FPS 시장이 굉장히 크다고 본다. 최근 밸브의 스팀 서비스에서 뜬 게임은 대개 FPS 장르다. <카운터스트라이크>를 필두로 PC에서 많은 유저층을 가지고 있었던 점도 있고.
미국의 주류 게임 문화는 콘솔 기반이다. 거실에서 친구를 불러와 TV를 보면서 함께 즐기는 이미지다. 반면 PC게임이나 온라인게임은 얼간이(Nerd)가 혼자 방에 콕 박혀서 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미지도 크고. 하지만 온라인 FPS는 기존 경험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고, 그냥 맞추는 방식도 직관적이고, 쉽게 한판 하고 끝낼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이 미국 게이머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향후 온라인 FPS 게임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 <크로스파이어> <서든어택> <블랙샷>이 곧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고, 그 밖에도 많이 올 것 같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시장은 함께 커질 것으로 본다.
TIG> 지난 해부터 <마비노기>도 북미에서 서비스 중인데.
북미에서는 아주 대중적인 게임은 아니고, 마니아적 성격이 강하다. 지난 해 로나와 판이 나오는 비디오를 먼저 티저(teaser)로 먼저 내보냈는데, 블로그에서 굉장히 많은 인기를 얻으며 관심을 받았다. 마니아의 호응을 얻었지만, 그 후 성적이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2월 말에 초절정 대규모 패치를 내보냈다. <마비노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업데이트였다. 한국에서는 초반 하이브리드(복합형) 요금제였다가 부분유료로 전환하면서 유저들이 늘어났다. 미국에서도 원래 부분유료 게임이었지만, 2월부터 한국식 부분유료 시스템으로 바꾸면서, 1년치 컨텐츠를 한꺼번에 업데이트에 포함시켰다.
미국에서 패치는 게임에 문제가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업데이트는 무언가 조금 추가하는 수준으로 여긴다. 확장팩 하면 무언가 대규모로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데, 이번에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마케팅하고, 홍보 효과도 높아서 한달 만에 동시접속자가 2배 늘어났고, 매출은 그것보다 더 늘어났다.
<마비노기>는 화끈한 업데이트로 북미를 공략하고 있다.
TIG> 북미 스튜디오 폐쇄 배경은?
우리가 결정한 사항이 아니므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국 측에서 들리는 바로는 넥슨의 장점과 미국의 장점을 결합해 빠른 시간 내에 결과물을 내지 못한 게 폐쇄에 이른 가장 기본적인 원인이었던 것 같다. 스튜디오에 영입한 분들은 굉장히 훌륭했지만, 본사가 생각했을 맞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지 않나 싶다. 생각보다 준비기간이 많이 필요했고, 그 사이 다른 대외적인 환경적인 부분에 변화가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게 아닌가 싶다.
TIG> 당장 <슈가러쉬>의 향방이 불투명해지는데.
<슈가러쉬>는 캐나다 스튜디오와 클레이엔터테인먼트(서드파티)가 공동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캐나다 스튜디오에서 클레이와 협업하면서 게임을 개선하고, 넥슨이 서비스하는, 3자가 함께 하는 구조였다.
지난 해 말까지 두 차례 클로즈베타를 진행했고, 현재는 클레이와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 협의하는 중이다. 북미 스튜디오의 역할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TIG> 스튜디오 폐쇄 이후 향후 퍼블리싱 정책 변화는?
개발에 집중하는 조직이 사라졌기 때문에 미국의 서드 파티 게임을 완전히 현지화하는 게 힘들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미국 시장에 1차적으로 맞춘 게임을 준비 중이고, 북미에서도 소싱은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도 굉장히 많이 이야기하고 있고, 회사 인수 등도 여전히 고려 대상이다.
TIG> <카트라이더>의 북미 서비스가 중지된 이유는? 재개할 것인가?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오픈 베타 이후에 정식서비스를 아직 시작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상용화는 향후에 더 준비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이라는 시장에서 캐주얼 게임이 성공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카트라이더>는 넥슨을 대표하는 타이틀이니까, 미국에서는 동접 1만 수준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서서히 올라가는 식으로 놔둘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위해 계속 준비하고 있는 상태고, 올 것이 왔다, 하는 느낌을 유저들이 받을 수 있도록 더 큰 제휴나 마케팅 작전을 동반해서 나올 예정이다.
TIG> 의욕적으로 런칭했던 <오디션>도 실패했는데.
<오디션>은 4월 초 계약기간 만료 후 서비스를 정지했다. 미국에서는 한빛소프트 미국지사에서 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지난 달 새 서비스로 옮겨갈 수 있는 이동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실 <오디션>이 가장 어려웠다. 국내 서드 파티 게임인 데다, 음원 라이선싱이 굉장히 힘들었다. 제대로 된 곡 적정한 시기에 제공하지 못 했다. 유저들이 기대했던 퀄리티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었다. 게임 내에서 커뮤니티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북미 유저의 이해도가 부족했고, 내부적으로도 설립 이후 얼마 안 되어서 이런 부분에 대해 유저들에게 제대로 설명도 잘 못했고.
<던전앤파이터>는 현재 간단한 사이트만 열려 있다.
TIG> 그나저나 <던전앤파이터>는 언제 나오나?
올해 안에 런칭할 예정이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조만간 발표할 것이다.
TIG> 북미 온라인게임 시장 전망은?
예전 GDC에서는 온라인에 대한 세션이 하나였는데, 매해 지나면서, 온라인게임 관련 그룹이 생겼다. 아직 부분유료와 정액제에 대해 이야기가 많지만, <WoW>가 성공한 후 온라인게임 자체에 대해서는 모두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EA에서 부분유료 방식의 온라인게임도 나오고 있고, 다른 메이저업체들도 모색 중이고, 한국 업체들도 속속 들어오고 있고, 그런 참여들이 늘어나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본다.
거기에 인프라는 당연히 좋아질 것이고. 모바일 결제도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선불카드에 대한 유통업체들의 이해도도 좋아지고 있고, 채팅이나 아이템 중계 관련 솔루션 툴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는 속에서, 앞으로 업체들이 조금 쉽게 올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