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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 중소 개발사 저력 보여주겠다”

나루엔터테인먼트 김상범 대표

안정빈(한낮) 2009-06-14 18:03:44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중소 게임 개발사가 ‘캐주얼이 아닌’ MMORPG를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4~5년 전이라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꺼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그래픽이 향상되고 개발비만 수백 억 단위를 오가는 게임들이 ‘쏟아지는’ 이 시점에서 중소 개발사의 MMORPG가 경쟁력을 갖기란 쉽지 않다. 꿈을 가졌던 개발사가 좌절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오늘 소개할 나루엔터테인먼트의 김상범 대표도 2007년 <징기스칸>으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징기스칸>은 대규모 기마전과 용병 시스템 등으로 주목을 받은 나루엔터테인먼트의 첫 온라인게임. 하지만 지원을 약속했던 중국 업체가 잠적하고 수많은 거대 MMORPG에 밀려 테스트도 진행하지 못한 채 개발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좌절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2년 후, 신작을 들고 나타난 것.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만들고 싶은 개발자로서의 욕심을 이겨내지 못 했기 때문이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 징기스칸의 실패와 또 다른 꿈 

 

김상범 대표(오른쪽 사진)에게 2007년은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다.

 

2005년 게임 개발사를 열고 제작을 준비하던 무렵, 중국의 한 회사가 온라인게임 <징기스칸>의 개발을 제안했다.

 

신작 개발을 요청한 것은 회사의 가치와 구성원을 인정한다는 뜻. 이미 MMORPG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김대표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후, 열정에 가득한 김 대표와 직원들은 1년 동안 <징기스칸>의 개발에 몰두했다. 밤샘은 기본이었고 게임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전 직원의 중국 배낭여행까지 계획했다. 창업 자금의 대부분도 <징기스칸> 개발에 투자했다.

 

하지만 2007년 <징기스칸>의 개발을 제안했던 중국 회사가 돌연 연락을 끊었다. 이미 <징기스칸>의 세계관과 게임의 골격이 모두 완성됐고, 플레이 버전의 출고를 눈 앞에 둔 상황이었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개발비를 함께 부담해 만들었던 휴대용 게임 <드래곤마스터>가 출시 직전, 해당 게임기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게임기가 사라졌으니 게임 역시 판매를 할 도리가 없었다. 개발사로서 게임을 하나 출시해 보기도 전에 두 번의 실패를 겪었다.

 

그 동안 만들어 놓은 것이 억울해서 <징기스칸>의 새로운 퍼블리셔를 물색했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게임의 영상과 특징들이 주목 받고 중국 영웅이 나오는 온라인게임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정작 지원을 해 주겠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이내 회사자금도 바닥이 드러났고 20명의 직원 중 15명을 내보냈다.

 

서울에 있던 사무실도 유지하기 벅찼다. 아는 사람의 사무실 한 구석을 빌렸다. 전직원 5명의 초라한 이전이었다. 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더 할 나위 없이 완전히 망한 상황’이었다고.

 

그래도 김 대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 개월 동안 남의 사무실에 얹혀 지내면서 모바일게임 컨버팅과 외주 개발, PSP 교육용 게임 개발과 판매 등 손에 잡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맡았다.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치 않았다.

 

나루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한 <드래곤마스터>의 스크린샷.

 

그러던 중, 정말로 기회가 찾아왔다.

 

나루엔터테인먼트의 개발력을 인정한 한 게임업체가 외주개발을 의뢰했다. 12개월 장기 프로젝트였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회사에 남아있던 구성원들이 모두 힘을 모았다. <징기스칸>에서 사용하지 못 했던 기술도 아낌없이 도입했다. 그들은 게임 완성품에 대한 갈증이 높았다. 결국 12개월짜리 프로젝트를 8개월 만에 끝마칠 수 있었다.

 

예정보다 빨리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약간의 자본과 4개월이라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었다. 그리고 나루엔터테인먼트는 <에스타>의 개발에 착수했다. <징기스칸>에서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 연대기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진짜 판타지

 

실패로 끝났지만, <징기스칸>이 남긴 것은 많았다. 게임의 기획부터 개발까지의 과정을 정리할 수 있었고, MMORPG의 뼈대가 되는 다양한 시스템도 고스란히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4개월 만에 <에스타>의 기초를 만들어낸 것도 그 당시의 경험 덕분이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또한 <징기스칸>을 만들고 퍼블리셔를 구하는 과정에서 중소 개발사만이 가질 수 있는 돌파구’도 발견했다. 대형 개발사로서는 부담스러운 색다른 시스템의 도입과 사실감 넘치는 세계관”이다.

 

김상범 대표는 <에스타>의 세계관을 지칭하며 리얼 판타지라는 말을 사용했다. <에스타>가 추구하는 리얼 판타지는 말 그대로 ‘진짜 같은 환상의 세계’를 제공하는 것이다.

 

게임에 나오는 모든 상황과 사물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단순히 ‘몬스터와 기사가 등장하니까 판타지’라는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되, 그에 따른 치밀한 설정과 이야기가 ‘현실수준으로 자세하게 구현돼 있어야’ 진짜 판타지라는 것이다.

 

때문에 <에스타>는 각 종족은 물론 몬스터와 마을, 스킬과 카드 한 장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들이 부유대륙에 살게 된 이유에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까닭, 대륙의 숨겨진 비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게임을 진행하면서 톱니바퀴처럼 짜맞춰 돌아갈 수 있도록 스토리를 만들어 뒀다는 것이 김대표의 이야기.

 

온라인게임에서 스토리의 비중이 낮은 까닭은 이야기의 진행에 따른 변화를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유저가 A라는 악당을 죽이더라도 다음 유저의 퀘스트를 위해서 A라는 악당은 곧바로 같은 자리에 되살아나야 한다.

 

동시에 수많은 유저가 스토리를 진행해나가는 온라인게임의 한계다. 당연히 사실성은 떨어지고 스토리가 가져다 주는 몰입도’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같은 마을이라도 이야기를 얼마나 진행했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런 한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에스타>는 연대기 방식의 업데이트를 도입했다. 연대기 업데이트란 일정한 시기에 서버 전체에 이벤트가 발생하고, 해당 이벤트에서 조건을 충족한 유저들이 다음 단계의 서버로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챕터 1에서 한 유저가 A라는 종족과 우연히 접촉한 순간 서버 전체에 A종족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에서 침략해 오는 A종족을 모두 막아낸 유저들은 챕터 2의 서버로 넘어간다.

 

챕터 2 서버는 챕터 1에서 시간이 흐른 상태이기 때문에 챕터 1에서는 멀쩡했던 마을이 챕터 2에서는 폐허로 등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것도 없던 평원에 적의 성이 들어서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아직 A종족의 침입을 막지 못했거나 거기까지 스토리를 진행시키지 못 한 유저들은 조건을 만족시킬 때까지 챕터 1 서버에 남게 된다. 스토리의 진행에 따라 서버를 옮기면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처음 접하게 되는 마을. 첫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한다.

 

<에스타>는 사실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심고 연출도 강화했다. 예를 들어 어떤 공방은 ‘동물만을 소재로’ 아이템을 만들며 왕국마다 전직할 수 있는 직업도 정해져 있다. 전쟁 중인 지역에서는 성 밖의 적을 향해 끊임없이 소리치며 포를 쏘는 병사와 포를 맞으면서도 접근을 시도하는 몬스터를 만날 수 있고, 사람이 뜸한 상점의 아주머니는 툭하면 경비병과 잡담을 나누느라 자리를 비운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과 ‘사실성’을 심어줌으로써 플레이어가 ‘진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김상범 대표가 내세우는 <에스타>의 개발 목표다.

 

 

 

■ 카드와 수신수를 이용한 이색적인 전투

 

<에스타>의 전투 방식에는 새로움을 더했다. 김 대표는 다양한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 중소 개발사의 큰 장점 중에 하나라고 강조했다.

 

“극한까지 다듬은 그래픽이나 나날이 발전하는 화려한 효과들은 수백 억 단위의 프로젝트 게임들에게 맡겨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온라인게임의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자 강점입니다.”

 

규모가 큰 게임일수록 개발비를 회수하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유저 수도 많다. 자연스럽게 보다 대중적인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다.

 

결국 대부분의 대규모 온라인게임이 기존의 잘 나가는 대중적인 시스템과 컨텐츠를 가져와 재포장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안정적으로 많은 유저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컨텐츠와 시스템을 포장하고 나름대로의 차별화를 위해 택하는 방법이 바로 ‘화려한 겉모습’이다.고퀄리티의 그래픽을 앞세운 대규모 온라인게임은 많지만 정작 참신하고 신선한 게임은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발비가 많이 들지 않는 중소 온라인게임은 필요로 하는 유저의 수도 그만큼 적다. 물론, 유저가 많이 찾을수록 좋지만, 색다른 시도를 하는데 비교적 자유롭다는 뜻이다. 김 대표가 중소 개발사의 돌파구로 색다른 시스템을 꼽은 이유다. <에스타>의 전투에는 이런 김 대표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에스타>의 일반 전투는 스킬 카드를 이용한 방식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며 각종 퀘스트와 사냥의 보상으로 스킬 카드를 얻는다. 습득한 스킬 카드는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언제든 덱에 집어 넣고 일반 스킬처럼 사용할 수 있다.

 

스킬은 카드를 활용한 방식이다. 미리 사용할 스킬을 정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킬이 카드의 형태로 되어 있는 만큼, 유저 간의 거래도 가능하며 대규모 전쟁에서는 자신의 역할과 계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스킬 카드도 제공된다. 예를 들어 지휘관은 전방에서 싸우기 보다는 후방에서 지역별로 필요한 버프를 걸어줄 수 있는 대규모 능력치 강화 카드를 받게 되고, 돌격대장은 최전선에서 싸우기 위한 방어력과 공격력 강화 카드를 제공 받는 식이다.

 

가능한 전략성을 살리기 위해 직업 간에도 가능한 카드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한 번 편집한 덱은 마을이나 중간거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유저는 마을을 벗어나거나 투기장, 전장 등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의 덱을 한번씩 점검해 보게 된다.

 

소환수를 불러내거나 이미 불러낸 소환수를 대규모로 제거하는 등 각 스킬 카드 사이의 상성도 극명해서 게임을 하다 보면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TCG(트레이딩 카드 게임) 같은 특유의 전략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아직 한창 개발 중인 수신수. 크기가 상당하다. 

 

또한 길드 간의 전투에서는 수신수 시스템을 도입했다. 수신수란 일종의 거대한 탈 것으로 평소에는 <에스타>의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 일정 인원이 넘은 길드는 레이드 몬스터로 존재하는 수신수와 싸울 자격을 얻는데 여기서 승리하면 해당 수신수를 포획하게 된다.

 

포획한 수신수는 직접 장비를 입히거나 타고 다닐 수 있으며 타 길드나 국가와의 전투에도 활용된다. 수신수의 실제 크기가 어지간한 마을과 맞먹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수신수 vs 수신수의 전투는 공성전 규모로 이뤄진다. 수신수의 종류도 하늘을 나는 것부터 땅을 달리는 것까지 다양하게 구현되어 있다.

 

스킬 카드 시스템으로 처음 <에스타>를 접한 유저가 새로움을 느꼈다면 수신수를 통해 어느 정도 게임을 진행한 유저들에게 또 다른 새로움을 느끼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 실패에도 꺾이지 않는 중소 개발사의 힘 보여줄 것

 

<징기스칸>의 실패 이후 <에스타>를 만들겠다고 나설 때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고 한다. 어렵게 마련한 시간과 돈인데 자본과 인력이 많이 드는 MMORPG보다 캐주얼게임부터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시작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하나의 완벽한 가상 세계를 만드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도 없었고, 가장 자신 있는 장르도 MMORPG였다. “캐주얼이나 FPS 게임에도 그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둘 다 MMORPG만 만들어 본 우리가 쉽게 도전할 장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다행히 직원들 역시 김 대표의 이런 생각에 동조했고 그 결과 13명의 인원이 반년 만에 내부 테스트가 가능한 수준의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징기스칸>의 실패에서 배운 노하우와 아무 말 없이 야근을 감내해 주는 직원들 덕분이다.

 

몇 년째 함께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김상범 대표와 안민 개발이사(오른쪽). 직원들이야 말로 나루엔터테인먼트 최고의 보배라고.

 

자신도 있다. 캐릭터의 특성이 살아나고 유저가 <에스타>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는 레벨 40까지는 매우 빠른 레벨업을 보여주겠단다. 게임의 생명은 끝없는 자극인데 가뜩이나 플레이시간이 긴 온라인게임이 초반부터 컨텐츠를 아껴서는 결코 자극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쏟아지는 컨텐츠와 새로운 방식의 전투에 놀라고, 중반 이후에는 스토리에 몰입되며, 후반에는 자연스레 PvP와 전쟁에 참가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 <에스타>의 목표.

 

김상범 대표는 “블리자드 같은 회사가 목표”라고 말했다. 기술이나 스케일이 아닌 ‘나이 50이 넘어서도 애정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서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따라준 직원인 만큼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것이 회사와 관련된 그의 꿈이다.

 

“중소 개발사가 MMORPG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사무실에서 게임을 만드는 것도 요즘은 보기 어려운 광경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힘과 끈기, 그리고 저력이 있습니다. 그걸 보여줄 때까지는 계속 게임을 만들어 나갈 겁니다.”

 

<에스타> 오는 12월 첫 번째 클로즈 베타테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작은 사무실과 몇 번의 쓴 실패에도 기죽지 않고 또 다시 ‘새로움’에 도전하겠다고 외치는 그들이 ‘중소 개발사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나루엔터테인먼트의 개발실 전경.

 

김상범 대표 뒤로 빼곡하게 보이는 <에스타>의 설정과 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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