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나라>는 지난해 알만툴 게임잼에 출품됐던 내러티브 게임이다. 탑 다운과 횡스크롤이 결합된 게임으로 분량은 2시간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창작자 딥핑크맨이 만든 이 게임은 인디게임 퍼블리셔 사이코플럭스가 유통을 맡아 지난 3일 스팀에 등록됐다. 특이하게도 이 게임은 현재 무료로 제공 중이며, 희망자에 한해서 1,100원에 판매된다.
이 게임도 하루에만 100여 개가 출시되는 수많은 스팀게임 중 하나다. RPG 메이커로 만든 게임이 스팀에서 주목을 받기란 대단히 어렵다. 오늘(13일), 게임에는 6개의 평가만이 달려 있다. 그럼에도 굳이 <비가 내리는 나라>를 소개하려는 까닭은, 주제와 스토리텔링 차원에서 한국 게임이 그간 좀처럼 선보이지 않았던 성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이 기사에는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다.
게임은 끝임없이 '비가 내리는 나라'에서 침수를 막으려는 '여행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간단한 퍼즐을 해결하면서 스테이지를 나아가는데, 판타지 세계가 끝나면 현실 세계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조다. 여행자의 모험은 사실 주인공 '찬우'의 상상으로 찬우는 친구 '영호'를 잃고 트라우마에 빠진다. 판타지 세계는 탑다운으로, 현실 세계는 횡스크롤로 구성되었다.

여행자 시점에서의 세계

찬우 시점에서의 세계
게임의 진행에 따라서 영호는 철근을 빼먹고 부실 시공으로 지어진 아파트에서 거주하다가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영호의 친구이자 주인공인 찬우는 오늘따라 네 집에서 자고 싶다는 영호에게 모질게 대했고, 그 결과가 영호의 죽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비탄에 잠긴 찬우는 상상 속에 여행자가 되어 눈물이 비처럼 내리는 세상을 탐험하게 된다.
각각의 스테이지는 부정(Denial), 분노(An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 '5단계 정서 단계'를 의미한다. 여행자가 퍼즐을 해결함에 따라서 찬우는 애도의 '수용'으로 이끈다. 퍼즐 하나를 풀면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며, 난도는 낮은 편이다. 몇몇 대사의 경상도 방언 표현이 어색했고, 세계의 전환은 다소 심심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가격 구성과 주제 의식은 단점을 충분히 상회한다.
<비가 내리는 나라>는 아파트 부실 시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일어났던 많은 사회적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대표적으로 2014년의 세월호와 2022년의 이태원 참사는 많은 사람에게 깊은 아픔을 안겼다. 그간 사회적 참사와 남겨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게임이라는 매체로 풀어내는 일은 어려운 일처럼 여겨졌다. 줄곧 여행자를 잡아먹을 것처럼 굴던 '레드울프'는 여행자(찬우)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레드울프는 여행자(찬우)의 죄책감이 빚어낸 화신이다
이 게임은 찬우와 영호의 우정으로 말미암아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기를 선택했다. 죄책감(레드울프)는 평생 주인공의 곁에 있을 것이라고 절규하면서 사라지고, 분노와 슬픔 속에서 주인공은 그것을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죄책감 또한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수용'하면서 여행자의 여정은 종료된다. 찬우는 그렇게 고인을 추모하고 일상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선다.
<비가 내리는 나라>는 특별한 주제의식을 담은 게임이다. 짧지만 강렬한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게임의 결말은 개발자의 자기고백이 있으며, 이는 플레이어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서사 중심의 게임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풀어낸 게임을 찾는 게이머라면 부담 없이 해볼 만하다. 창작자 딥핑크맨의 다음 행보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