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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과 협업하고, '매우 긍정' 평가도 받은 임팩트 게임 개발사

호주 '카오스 시어리' 대표 인터뷰

방승언(톤톤) 2024-11-05 18:47:24
‘카오스 시어리’(Chaos Theory)는 호주 게임 개발자 협회가 ‘2024년 올해의 스튜디오’로 꼽은, 내실 있는 개발사다. 더 나아가 ‘2024 게임스컴 라탐’에서는 ‘베스트 소셜 임팩트’ 부문을 수상했고, 유니티로부터 ‘2024 유니티 포 휴머니티 그랜트’ 상도 받았다.

수상 내역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카오스 시어리는 ‘임팩트 게임’ 혹은 ‘기능성 게임’에 주력하는 회사다. 호주 정부, 학교 등은 물론 유엔 산하의 유엔세계식량계획(United Nations World Food Programme) 의뢰로 교육용 게임을 만드는 등, 명성을 더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 등 유수 기업의 마케팅 프로젝트, 순수 상업 게임 개발도 등한시하지 않는다.

눈길을 끄는 지점은 화려한 협업 내역 뿐만이 아니다. 고객의 문제를 예리하게 식별해 효율적 해법을 제시하는 협업 스타일은 설루션 개발사를 연상시킨다. 반면 올해 6월 출시해 스팀에서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자체 IP 타이틀 <크랩 갓>은 정통 게임 개발사로서의 탄탄한 내공도 짐작케 한다.

카오스 시어리를 공동 창업한 3인의 CEO 중 한 사람 ‘니코 킹’을 호주 현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소규모 기업 ‘카오스 시어리’가 촉망받는 개발사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던 배경, 그리고 좋은 임팩트 게임이 만들어지기 위한 요건에 관해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 디스이즈게임 방승언 기자

니코 킹 '카오스 시어리' CEO

Q. 디스이즈게임: 카오스 시어리의 역사와 본인을 포함한 공동 창업자 세 명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니코 킹 '카오스 시어리' CEO: 네, 저희 셋은 약 10살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입니다. 가까이 살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그때부터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세상을 더 낫게 바꾸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함께 12살이 됐을 무렵엔 스튜디오 창업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내내 게임을 같이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18살이 무렵에는 실제로 회사를 만들어서 모바일 게임 업계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고요. 당시엔 3명이 손댈 만한 사이즈의 작은 게임부터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엔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 싶다는 당초 꿈에 따라 지역 축제 등에서 관련 프로젝트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덕분에 저희랑 협업하고 싶어 하는 대학교와 연구소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시리어스 게임의 세계에 진입했습니다. 피부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 게임, 사시성 약시 연구를 위한 실험적 데이터 수집 툴 등을 만들었죠.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여러 조직과 계약을 맺어 일하고 있습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 제약회사, 기술기업 등과 협업했고, 삼성의 마케팅 프로젝트를 맡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어요. 모바일 시장에서는 지난 3년여에 걸쳐서 캐주얼, 하이퍼캐주얼 등 장르에서 순수 오락성 게임도 만들어 봤고요.

현재는 고객사 의뢰로 몇몇 비공개 프로젝트에 매진 중입니다. 그리고 올해 중반쯤 신작 <크랩 갓>을 내놓았는데 저희 기준에 반응이 괜찮은 편이에요. 지난주에는 상도 받았고요. 이렇듯 개발에 있어서 (상업성과 공익성의) 양극단을 모두 체험해 봤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세 CEO가 어린 시절 직접 손으로 그려 가며 구상한 게임 UI


Q. 세 CEO분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왜 어려서부터 세상을 바꾸는 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건가요?

A. 그때 저희는 모두 게임에 빠져 있었고 그 안에서 매우 다양한 가치를 발견했어요. 그러면서 서로 게임에 관해 많은 견해를 나눴지만, 임팩트 게임 얘기를 중점적으로 하진 않았어요. 그저 이전까지 플레이했던 것과는 다른 유형의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뿐이죠.

당시 우리 관심사는 주로 의학, 우주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것이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 게임을 통해 똑같이 세상에 흥미를 느끼면 좋겠다고 희망하게 됐죠.

왜 우리가 임팩트 게임 개발에 발을 들였는지 묻는다면, 모든 주제에 대해 열려 있었지만 이왕이면 의미 있는 주제를 고르고자 했을 뿐이에요. 개별 인간으로서의 가치관을 게임에 반영하는 한편, 우리와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게임이 되길 바란 것뿐입니다.

그게 게임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아요. <크랩 갓>도 그런 예시에요. <크랩 갓>은  <레인보우 리프>, <블리치드 AZ>에 이어서 우리가 세 번째로 만든 산호초 관련 게임이에요. 산호초는 지구상 실존하는 매우 이질적이고, 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환경이에요. 동시에 여러 환경 압박들로 인해 위험에 처해있기도 하죠.

산호초는 아름답기 때문에 산호초 테마로 게임을 만들면 시각적, 게임플레이적 이점을 챙길 수 있어요. 위태로운 자연환경에 관한 인식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거기에 더해지는 추가적 가치인 거고요.



Q. 시리어스 게임을 많이 만드는 스튜디오로서, 뜻을 같이하는 좋은 인재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채용 과정이 어땠는지 경험을 공유해 준다면?

A. 네, 채용은 항상 어려운 일이죠. 초기에는 특히 더 어려웠어요. 아무도 모르는 작은 신생 기업이었으니까요. 게다가 투자도 못 받아 외주 개발로 자금을 스스로 대는 상황이었어요. 연봉을 많이 챙겨줄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어린 나이였지만, 주니어를 뽑아 훈련 시키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난 4~5년 동안에는 고용이 훨씬 쉬워졌어요. 저희와 가치관을 같이 하는 인재들을 찾는 데 있어서 부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물론 아직도 가치관 일치 여부는 채용 판단 기준 중에 우선순위가 높은 항목입니다. 실제로도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치관이 우리와 맞지 않아 채용하지 못한 후보도 많았고요.

우리 가치관이 작업물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반영되기를 바라거든요. 채용 시점에 그 지점을 신경 쓰지 못하면, 회사가 가치관으로부터 멀어질 거라고 봐요.

어쨌든 업계에서 명성이 쌓인 이후로는 사람 구하기가 많이 쉬워졌습니다.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찾아오기 시작했거든요. 지원 서류를 보면 우리 회사의 가치가 마음에 드는 이유, 그 배경 등이 쓰여 있습니다.

카오스 시어리 직원들 (출처: 공식 홈페이지)

Q. 문제점을 먼저 식별한 뒤 설루션을 제안하는 개발 스타일이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 놀라운 건 그렇게 나온 설루션이 창의적이면서도 상당히 목적에 부합한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 준다면요?

A. 실제로 우리가 맡았던 프로젝트 중 가장 흥미로운 것들은 고객 측에서 특정한 문제를 먼저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 우리에게 게임 디자인을 맡긴 경우에 나와요.

대다수 경우 고객 측은 해결하고자 하는 해당 사안에 있어 전문가고, 저희는 게임 디자인 및 개발에 있어서 전문가죠. 따라서 근본적으로 좋은 협력이 필수예요. 좋은 협력은 서로 상세히 소통하고, 사안에 대한 고객 측 연구 결과를 우리가 최대한 흡수했을 때 가능하고요.

저희가 만든 게임에서 다루는 사안은 인도주의 지원, 인터넷 거버넌스, 특정 질병 등으로 다양해요. 우리가 짧은 게임 개발 기간 내에 해당 사안들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죠. 대신 협력 과정을 통해 훌륭한 관련 연구 결과들을 얻어낼 수 있어요.

이렇게 다뤄야 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는, 거기에 게임 디자인을 적용해요. 이때 저희가 택하고 있는 개발 방식은 사브리나 컬리바(Sabrina Culyba)의 ‘전환적 프레임워크’라는 이론에 잘 요약되어 있는데요. ‘전환적 프레임워크’는 게임 개발 각 단계에서 식별해야 할 중요한 구성요소가 뭔지 잘 설명해 주는 이론입니다.

그 구성요소 중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타깃 청중의 식별입니다. 실제 타깃 청중을 대변하는 그룹을 최대한 빨리 만나서 게임을 테스트하고 검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창작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즉각적으로 해당 아이디어를 타깃 청중 그룹을 통해 테스트해 보는 겁니다. 이때 프로토타입 수정과 테스트 반복을 통해 분명한 프로젝트 목표 및 KPI를 설정한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움직여요.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며 다양한 단체, 기업과 협업했다. (출처: 공식 홈페이지)


Q. 실제 사례를 들어줄 수 있나요?

A. <캥거주>를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해외 16~20세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호주의 자연과학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호주 외교통상부에서 해당 문제의 해결에 게임이 적격이라고 판단해 저희에게 연락을 해왔어요.

의뢰한 쪽에는 생물학 전문가, 정부 측 인사, 호주 원주민 전문가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저희는 그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게임에 들어가야 할 요소가 뭔지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이후에는 동물을 구조해 자생을 돕는 내용의 어드벤처 게임을 제안했고, 게임 속 과학적 사실들이 정확히 표현될 수 있도록 많은 자문이 이뤄졌습니다.

다음으로 피그마(Figma)를 이용해 클릭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타깃 청중 대상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이때 얻은 피드백을 통해 어떤 요소가 먹히고, 또 어떤 요소는 먹히지 않는지 파악한 뒤, 다음 단계인 실제 개발 및 수정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동 성폭력 방지 재단인 ‘브레이브 하트’ 재단 의뢰로 만든 <킵 세이프 어드벤처>에서도 비슷한 프로세스를 거쳤어요. 재단 측에서 희망하는 구체적인 학습 결과와 학습 목표를 제시했고, 저희는 재단 측 교육 전문가 및 성폭력 방지 전문가로부터 게임에 들어갈 요소를 알아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도 저희는 어드벤처 장르를 제안했어요. 타깃 청중이 접근하기에 가장 좋은 프레임워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고객측 전문가를 통해 게임에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을 알아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 공식 홈페이지)

앞서 저희 게임의 창의적 부분과 문제 해결 부분을 어떻게 조화시키는지에 대해서 질문하셨죠. 많은 경우 창의적 영역은 타깃 청중의 선호에 의해 결정됩니다. 타깃 청중을 구체적으로 확정할수록, 적합한 게임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쉬워져요.

가령 어드벤처 게임의 경우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환경을 탐사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여러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새 사실을 배우도록 하는 데 적합해요

한편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해 가르치는 게임 <IPGO>의 경우 퍼즐 요소가 훨씬 강하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타깃 청중의 성향이 논리적이고,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고객과 협업하며 게임의 핵심 소재에 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가능성 있는 창의적 선택지를 찾아낸 뒤, 고객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게임을 만들어 나갑니다.

<캥거주> 플레이 화면 중 일부 (출처: 공식 홈페이지)


Q. 고객 측에서 분명한 목표를 상정한 뒤 의뢰하는 게 개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 같은데요. 그렇다면 반대로 고객사와 여러분 의견이 상충할 때도 있을 듯합니다. 이 경우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A. 우리는 우리 스스로나 고객사 자체를 위해 게임을 만드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보다는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할 타깃 청중을 위해 만들죠. 여기서 타깃 청중은 학생, 특정 질병 보유자 등으로 다양합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되도록 고객사 측에 게임 디자인 과정 전반과 게임 디자인 프로세스에서의 우선순위에 대해 교육합니다. 그러면서 타깃 청중으로부터 게임 디자인을 확인받는 것이 그러한 개발 프로세스의 당연한 일부라는 점을 함께 인식시켜요.

그래서 만일 고객과 의견 마찰이 생긴다면 직접 우리의 전문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타깃 청중으로부터 게임 디자인의 유효성을 확인받는 편입니다. 청중 테스트를 통해 무엇이 더 나은 디자인인지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수집해 전달하는 방법을 택하죠.


Q. 반대로 프로젝트에 있어 되도록 피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요?

A. 프로젝트의 속성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판매용 임팩트 게임을 제작할 생각이라면, ‘임팩트’는 정작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게임에 담긴 긍정적 효과 때문에 게임을 사지는 않는 것 같아요. 흥미롭고 몰입적이어야  게임을 삽니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번 <크랩 갓>을 예시로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크랩 갓>은 고객이 따로 없고 저희가 스스로 임팩트를 목표하여 만든 게임이에요. 이 게임을 만들 때 저희는 사람들이 진짜 하고 싶을 만한 재미있고 몰입적인 게임을 만드는 데 가장 집중했어요.

물론 임팩트는 저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저희는 임팩트 게임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 있는 전략 게임을 판매한다고 생각하고 접근한 거죠. 저희 자체 프로젝트에서 견지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반면 고객이 따로 있는 임팩트 게임에서는, 광범위한 청중을 노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객들은 늘 최대한 많은 사람을 노리기를 바라요. 하지만 더 넓은 폭의 청중을 타게팅 할수록, 오히려 실질적 임팩트를 발휘하기는 힘들어집니다. 실제로 우리가 만든 임팩트 게임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들은 타깃 청중이 아주 집약적이었어요.

만약 너무 넓은 폭의 청중을 노린다면, 청중의 구체적 선호나 게임 문해력 수준을 추정할 단서가 사라집니다. 그러면 활용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인 수단의 가짓수도 함께 줄어들어요.

예를 들어 약 10년 전만 해도 온라인 학습 게임들은 아주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어요. 이건 그들 게임이 아주 넓은 폭의 청중을 노렸기 때문입니다.

자체적으로 만든 상업형 임팩트 게임 <크랩 갓>


Q. <크랩 갓>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객 없는 자체 게임으로는 처음인가요?

A. 10년 만의 첫 오리지널 IP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업 초창기에 한두 개의 자체 모바일 게임을 만든 적은 있지만 저희 자체 IP로 만든 게임 중에서는 <크랩 갓>이 가장 규모 있고 잘 만들어진 게임이에요.

<크랩 갓>은 분위기 있는(atmospheric) 횡스크롤 전략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제목처럼 ‘게 신’이 되어 게 군락을 성장시키면서 산호초와 다양성 높은 생태계를 꾸려 나가야 합니다.

게임상에서 당신(게 신)은 쇠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대체할 새로운 게 신을 길러 그가 대신 해양을 보호하고 보살피게끔 해야 해요.

어린 게 한 마리를 다음 ‘신’으로 선정하면, 그 게는 알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다음부터 유저는 신이 태어날 알을 잘 보호·양육하면서 점차 더 바닷속 깊은 곳으로 이동해가야 하죠. 그 과정에서 신성한 알을 공격하고 파괴하려 드는 다양한 적을 마주치게 됩니다. 이들을 막으려면 군락의 다른 게들을 성장시키고, 각자 특성을 길러 줘야 합니다.


Q. <크랩 갓>의 개발 과정이 이전 프로젝트들과 무엇이 달랐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전에도 산호초 보호에 관한 게임을 두 개 만든 적 있어요. 둘 다 매우 규모가 작고 실험적이었죠.

그런데 산호초 보호 게임에 돈을 댈 투자자를 찾는 건 힘든 일이었어요. 처음엔 정부나 관련 재단에 게임을 피칭했었어요. 하지만 게임 매체는 너무 위험하거나 이상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후원을 받지 못했어요. 이후에는 퍼블리셔들에 게임을 피칭했는데, 퍼블리셔들은 반대로 게임의 임팩트 측면을 이해하지 못해서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했고요.

<크랩 갓>에서 우리는 이전 프로젝트에서는 해보지 못한 창작적 모험을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임팩트 게임을 만들어 온 지난 10년의 자랑스러운 경험을 모두 쏟아부어 <크랩 갓>을 만들었어요. 저희의 게임 디자인 철학을 반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개발 과정에서 다른 점은, 소재에 대한 전문성을 내부 인력으로 해결했다는 점 같아요. 저 자신이 팀에서 해양환경 보존 전문가 역할을 했어요. 물론 취미 수준이기는 했지만 저는 관심이 많았고, 공부도 많이 했었거든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고, 관련 기사도 많이 읽었죠

'게 신'이 되어 후계자를 키우며 게 군락을 관리해야 한다.

당연히 제가 해양 생물학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게임 콘텐츠의 초기 윤곽을 잡기에는 충분한 수준의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 <크랩 갓> 속 요소 중에는 현실 세계의 작동 방식을 변형시켜 반영한 것들이 많아요. <크랩 갓>은 시뮬레이션이 아니고, 따라서 현실의 1 대 1 복제품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개발팀이 인정한 결과죠.

그렇지만 <크랩 갓>은 분명히 해양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크랩 갓> 덕분에 해양에 관심이 생긴 유저라면 인게임 백과사전을 읽어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크랩 갓>의 진짜 역할은 일종의 진입로예요. <크랩 갓>에서 재미를 느낀 유저가, 해양에 관한 다른 매체나 정보를 추가로 접해보고 싶어지길 바라는 거죠. 해양을 다루는 블로그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겠고요.

인게임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은 관심을 고취하는 데 있다.

Q. 현실을 조금 변형시켜 게임에 반영했다는 얘길 들으니, 여러분의 다른 게임 <샤밀라>가 떠올라요. 임팩트 게임으로서는 보기 드물게도 현실이 아닌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뭘까요?

*샤밀라: 유엔세계식량계획 의뢰로 카오스 시어리가 개발한 전략 게임. 가상의 세계 ‘카야’를 배경으로 식량 지원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목표다. 각 집단의 문화적 배경, 처해있는 위협 등에 따라 서로 다른 유형과 강도의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유저가 깨닫게 하는 데 목표가 있다.

A. <샤밀라>는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였고 저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이죠. 이 게임이 판타지 배경을 갖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유엔세계식량계획이 게임 개발을 저희에게 의뢰했던 시점에는 게임 디자인 자문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한 상태였는데요, 판타지 테마는 그들이 제안한 것이었고, 저희는 그들과 함께 세부 사항을 결정해 나갔어요.

궁극적으로 <샤밀라>가 판타지로 설정된 건, 안전한 학습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유엔세계식량계획이 다루는 현실의 사안들은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게임 속 사람과 정책 묘사에 있어서도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유엔에게 있어 식량 지원 수혜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막중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게임에 판타지 콘셉트를 도입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이 특정 문화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혹은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어요. 또한 유저들이 게임이라는 학습 공간 안에서 (심리적 거부감 없이) 자유롭게 실수하고 실험할 기회가 열렸고요.

게임의 구체적 목적과도 관련되어 있어요. <샤밀라>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목적이 아니고, 유저의 관점을 전환하는 게 목적인 게임이에요. 이런 기획에서 현실에 직접 매이지 않은 판타지 세계를 활용하면, 유저들이 콘텐츠에 대해 더 열린 마음과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죠, 게임 내의 여러 관점을 더 존중하고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돼요.

<샤밀라>는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다.

*<샤밀라> 공식 페이지

Q. 유엔세계식량계획 등 유수의 글로벌 조직과 함께 일해 왔는데, 앞으로 협업해 보고 싶은 조직 혹은 기업이 있다면?

A. 꼭 협업해 보고 싶은 기업은 디스커버리 채널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이에요. 아직 제안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러고 싶은 리스트에 항상 포함되어 있죠.

한 가지 이유는 제가 어렸을 때 (이들이 만든) 자연 다큐멘터리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이에요. 두 기업 모두 엔터테인먼트와 교육, 그리고 소셜 임팩트를 훌륭하게 융합해 내고 있죠. 그래서 팬도 많고요.

우리 게임도 인터랙티브 버전으로 똑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계속 창출해 내고 싶고요. 그런 면에서 협업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Q. 협력에 관해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주로 영어권 국가의 기업 혹은 단체와 협업해 온 것 같은데, 한국을 포함한 비영어권 국가 기업과의 협업 기회도 계속 지켜보고 있나요?

A. 네 물론 새로운 기회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저희는 인력이나 자원이 부족한 편이고, 그래서 최근까지는 미국, 유럽 시장으로의 확장에만 주로 몰두했어요. 저희에게 가장 쉽고 문제가 적은 선택지였으니까요. 호주는 지리적으로는 ‘모든 곳’에서 멀잖아요? 그래서 문화적으로라도 더 가까운 미국 혹은 유럽으로 먼저 진출한 거죠. 일하는 문화가 비슷하고, 게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적용하기에도 좋으니까요.

한편 <크랩 갓>의 경우 저희 게임 중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됐는데, 한국과 일본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이 확인됐어요. 따라서 다음 프로젝트부터는 이들 지역의 우선순위도 높아질 것 같아요.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에는 지스타 초청도 받았고, 한국에서의 기회 역시 앞으로 모색해 보고 싶습니다.


Q. 지스타 참가 얘기가 나왔는데, 주정부에서 해외 게임쇼 참가를 위한 여비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외 호주 정부의 대표적 게임업계 지원으로는 DGTO가 자주 언급되는데, 관련하여 카오스 시어리의 경험은 어땠는지 공유해주신다면?

A. DGTO는 호주 게임 산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특히 큰 스튜디오에 도움이 많이 되죠. 덕분에 호주 게임 산업에 경쟁력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많은 국제 개발사들이 호주에 스튜디오를 설립하려는 조짐도 보여요. 라이엇 게임즈가 호주 스튜디오를 인수했고, 유비소프트 호주 지사도 원래 퍼블리싱만 했었는데 작은 개발팀이 생겼어요.

이렇듯 DGTO 덕에 투자가 더 많이 유치되고 있어요. 그렇게 산업이 커지면 종사자들의 이직 가능성, 그리고 주니어 개발자들의 역량 성장 가능성도 함께 커지게 되어 있으니 좋은 일이죠.

저희 게임 <크랩 갓> 역시 DGTO 적용 대상 프로젝트인데요. 이 사실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동력이기도 했습니다. 프로젝트에 재정적 안정성이 크게 확보되었던 거죠. 아시겠지만 게임 개발은 투자 전략 측면에서 리스크가 매우 크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DGTO는 호주 업계 전반에 종합적으로 긍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 작은 규모의 인디 팀, 혹은 더 초기 단계 프로젝트를 비슷하게 지원해 주는 후원 제도가 추가되면 좋을 것 같아요. 가령 ‘슬레이트 펀딩’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여러 작은 프로젝트를 한 번에 후원하는 시스템을 말해요. 게임 산업이 흥행 주도 경제라는 것을 생각할 때 아주 어울리는 방식이죠.

슬레이트 펀딩 방식으로 지원을 받으면 단일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람을 고용할 필요 없이, 전체 고용을 유지하면서 프로젝트 여러 개를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어요. 이 경우 사업체와 직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겠죠.

이렇듯 앞으로 더 시도해 볼만한 후원 제도는 있을 듯해요. 하지만 현재 제도에도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삼성과도 협력했다 (출처: 공식 홈페이지)


Q. 마지막으로 회사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을 밝혀주신다면.

A. <크랩 갓>과 비슷한 게임을 계속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재미도 있고 임팩트도 있는 좋은 게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재미와 임팩트의 균형, 결합이야말로 우리 스튜디오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덕분에 게임스컴 라탐에서 소셜 임팩트 상을 받는 등 수상도 여러 번 했어요.

추가로 몇 가지 프로토타입을 제작 중인데, 그중에는 <크랩 갓> 유니버스와 IP를 확장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외 시뮬레이션, 전략 분야에서 새 콘셉트를 실험 중인 프로젝트도 있고요.

특히 향후 프로젝트에서는 스토리를 약간 도입하고 싶어요. <크랩 갓>의 경우 굉장히 시스템 주도적인 게임이라서 시뮬레이션과 전략에 집중되어 있는데요. 앞으로의 게임에선 스토리를 가미할 경우 훨씬 더 강한 임팩트, 감성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기대 중입니다.

그 외 여러 기업, 조직, 재단, NGO, 스타트업 등과의 협업도 계속할 것이고요. 지난 10년 동안 굉장히 여러 그룹과 함께 해왔는데 모두 매우 가치 있고 보람찬 경험이었고 여러 분야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우리의 전문성을 제공하고 협력함으로써, 세상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게임, 사랑받는 임팩트 게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유엔세계식량계획 같은 고객사와 협력했을 때 발휘할 수 있는 임팩트는 <크랩 갓> 같은 저희 자체 게임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는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기도 했고요.

따라서 앞으로도 양쪽 모두에 매진할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구체적 상품 개발에 얽매이지 않은 채, 창작적인 모험을 감행할 겁니다. 지금보다 더 이상하고 기묘한 시도에 나설 수 있겠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처럼 규모 있는 조직들과 협업하면서, 게임 혹은 게이미피케이션을 통해 중요한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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