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PlayX4 2025]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다”

죄책감 3부작 이후 '미제사건'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

한지훈(퀴온) 2025-05-25 19:57:34
개발부터 아트까지, 업계 트렌드 세터들의 노하우와 철학을 공유하는 자리 ‘2025 플레이엑스포 게임산업 트렌드 특별 강연’이 25일 플레이엑스포 현장에서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인디 게임 개발자 소미(SOMI)가 강연자로 참석했다. 그는 앞서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 등 죄책감 3부작을 개발한 1인 개발자로, 최근에는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이하 미제사건)을 출시하여 독일 ‘A Maze.’에서 대상, 미국 ‘IndieCade’에서 내러티브상을 수상하여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강연에서 그는 <미제사건>의 개발 과정과 주제, 구성 등을 하나하나 해부하며 내러티브 중심의 게임을 개발한 자신의 경험과 개발 방향 등을 소개했다.

죄책감 3부작, <미제사건>의 개발자 소미(SOMI)


#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

<미제사건>은 12년 전 발생한 ‘서원이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텍스트 기반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나이가 들어 퇴직한 전직 경감인 주인공은 젊은 여경의 도움을 받아 의식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어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실종사건의 전말을 찾아간다는 내용을 다룬다.

전작의 죄책감 3부작을 개발할 때만 해도 소미가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는 “당시 그의 작품은 사회의 어두운 면과 부조리와 관련된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이에 대한 분명한 주제 의식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죄책감 3부작의 첫 작품인 <레플리카>는 개개인의 휴대전화를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폭력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겪는 죄책감을 다룬다. <리갈 던전>은 경찰 수사 문건을 작성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근면한 악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더 웨이크>는 일기장의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으로 개발자 본인의 어린 시절 기억과 이에 대한 죄책감을 표현했다.

요컨대 죄책감 3부작은 소미 스스로가 느끼는 죄책감을 다룬 작품이다. 그는 게임을 통해 불합리한 현실을 마주하고 번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게임을 플레이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자신처럼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고 자신의 처지에 공감해주길 바랐다. 이런 메시지 때문에 해외에선 그를 한국의 정치운동가로 오해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겼다.

죄책감 3부작은 5년에 걸쳐 개발됐다. 이 사이에 게임에 대한 그의 태도도 바뀌었다. 게임을 자신의 메시지 전달의 통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은 그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작품이 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이후 <미제사건>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미의 죄책감 3부작. 왼쪽부터 <레플리카>, <리갈 던전>, <더 웨이크>


# 10년 차 개발자가 고집하는 게임 개발의 두 가지 원칙

그가 게임을 만들 때 고집하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기존에 본 적 없는 디자인의 게임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튜토리얼이 없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디자인의 게임에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튜토리얼 없이도 누구나 쉽게 게임을 익힐 수 있도록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낯선 경험을 주로 활용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스마트폰을 게임의 주 무대로 활용한 <레플리카>가 대표적인 예시다.

<미제사건>도 이와 유사하다. <미제사건>은 트위터 같은 SNS의 요소들을 활용했다. 인물의 이름을 클릭하면 프로필과 함께 그의 말이 타임라인에 따라 표시된다. 해시태그를 사용하면 해당 키워드와 관련된 트윗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익숙한 환경은 게임을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금방 이해하게 만든다.

익숙한 스마트폰을 게임의 배경으로 활용한 <레플리카>와


트위터 같은 SNS의 요소들을 활용한 <미제사건>

소미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 때 소설이나 영화 등 여러 작품에서 자주 영감을 받는다. <미제사건>은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속 “역사는 불완전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는 문구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진 이야기들을 어떤 순서로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구성은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 <N>에서 영감을 받았다.

<미제사건>은 2개의 엔딩을 가진 추리 게임이지만 기존 추리 게임과는 구조가 제법 다르다. 사건의 전말이 직소 퍼즐처럼 조각나있어 플레이어는 자신의 배경지식과 편견에 따라 이야기의 조각을 맞춰가게 된다. 게임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편견이 확신으로 굳어지도록 유도하다가 종착지에 이르러서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자신의 사고의 틀을 깨고 희열을 느끼게 만든다.

이 같은 구성이 만들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23년 5월부터 아이디어 구상을 시작해 그 해 12월에 제작이 마무리됐다. 게임의 시스템과 시나리오 구성에 3개월이 소요됐고, 남은 시간은 게임 내 등장하는 일러스트 제작에 소요됐다.

앞서 소개했듯 게임은 해외 유명 시상식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소미는 각종 게임 관련 행사에 초청받으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여러 게임을 출시할 때 중요한 것은 게임의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인디 게임 개발자로 10년을 활동하면서 ‘소미’라는 이름을 일관성과 특별함을 가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낸 것이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그가 <미제사건>을 개발하기 위해 참고한 작품들.

지난해 1월 출시된 <미제사건>은 평단과 대중들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른쪽은 일본의 유명 배우 겸 가수 호시노 겐의 인스타그램 사진.
평소 아라가키 유이의 팬이었던 소미는 이를 보고 그를 '좋아하게' 됐다고⋯


# 게임은 개발자의 마음을 투영하는 창

그에게 게임은 “개발자의 마음을 투영하는 창”이다.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진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들에게 인격과 서사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에는 개발자의 모든 사상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그의 전작들은 범죄와 수사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법학을 전공한 그는 게임 속 사건을 만들 때 실제 판례를 참고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됐다. 

긴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이랬다. 공권력의 역할과 피해자의 고통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여 게임 속 피해자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는 게임 속 이야기에 차별적인 것이 없도록 주의하고,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다루지 않도록 주의하기 위해 신중을 기울였다.

가령 <미제사건>에서는 치매라는 소재를 다루기 위해 많이 공부하고, 치매가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다뤄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게임이 출시된 지 1년이 지나서야 개발자 동료로부터 “좋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치매를 알고 있는 가족이 있어 선뜻 게임을 접하지 못했던 동료는 늦게나마 그가 치매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소미는 “자신이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바뀌었지만, ‘따뜻한 개발자가 따뜻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면 이전 작품보다는 더 아름다울 것”이라 전했다.


최신목록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