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시나는 이후 WWE에서 '무적 선역'으로 십수 년을 군림했다. 그 사이 로만 레인즈, 코디 로즈, 세스 롤린스 등등 무수히 많은 스타 선수가 WWE를 빛냈다. WWE 게임도 매년 게이머들을 찾아왔고, 2020년과 2021년의 공백기를 빼면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스포츠게임이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를 피할 수는 없었다. 매년 나오기 때문에 지친다는 것이다. 솔직히 기자는 화면만 보고 <WWE 2K22>(이하 WWE 생략)와 <2K23>, <2K24>를 구분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K25>를 위해서 주저하지 않고 패드를 잡았다. 글쎄 존 시나가 악역으로 턴힐을 했다지 않나.

2K의 WWE 게임 시리즈에는 '쇼케이스'가 있다. 다큐멘터리와 함께 유명한 선수의 일대기나 기억할 만한 명경기를 함께 돌아보는 기능으로 WWE 팬들에게 인기가 있다. 개인적으는 생겼다가 사라지는 선수 로스터보다는 짧게 즐길 다큐멘터리와 함께 제공되는 '쇼케이스'가 이 게임의 핵심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2K23>은 존 시나의 일대기가 소개됐고, <2K24>에서는 역대 레슬매니아의 명경기들이 재현됐다. 이번에는 더 락, 로만 레인즈, 솔로 시코아 등등 여러 사모안 레슬러들이 화합과 갈등을 벌이는 스토리라인은 근래 WWE에서 꽤 큰 줄기를 차지했다. 게임에서는 WWE에 많은 족적을 남긴 사모아계의 프로레슬링 가문 '아노아이'에서 활약한 여러 레슬러들을 플레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유명했던, 또는 가상의 매치를 플레이하면서 특정 레슬러의 이야기를 만나는 형태로 전작들보다 훨씬 더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감각이 강해졌다. 프로모터 폴 헤이먼의 진행으로 아노아이 가문에 속한 유명 레슬러들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개인적으로 그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사모안 레슬러들의 활약상을 꽤 자세히 접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1993년 레슬매니아 9에서 펼쳐진 요코주나와 헐크 호건의 매치에서 시작해서 파투와 사무로 구성된 '더 헤드슈링커스', 스톤 콜드와 함께 '애티튜드 시대'를 이끈 더 락의 초창기를 만날 수 있다. 앞서 짧게 언급한 '가상의 매치'는 사모안계 레슬러 피타 마이비아와 동물 기믹을 사용했던 조지 스틸의 케이지 탈출 룰 경기다. 이런 경우는 기자가 접했던 세대의 레슬러들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경험을 하는 느낌으로 즐길 수 있었다.

이번 <2K25>의 쇼케이스는 하나의 레슬러나 하나의 PPV가 아닌 레슬링 가문의 이야기로 플레이어로 하여금 역사 공부를 하는 감각을 전달한다. 16개의 에피소드 끝에 '자신만의 족장'을 골라서 다른 사모안 레슬러들을 물리치는 이벤트는 다소 유치한 느낌이 있지만, '각본 있는 드라마'의 마무리로서는 제법 나쁘지 않았다.
아울러 게임에는 블러드라인 멤버들이 난입하는 '블러드라인 룰'이 추가됐다.



<2K25>에는 체인 레슬링 시스템이 다시 도입됐다. 과거 <2K20>까지 존재했던 이 기능으로 이후 버전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이번에 부활한 것이다. 패드 왼쪽 스틱을 움직여 스위치, 공격, 핀, 랜치 등 고르고 게이지가 차오르는 스팟을 찾아서 상대와 경쟁하는 기능이다. 이러한 미니게임형 액션에 신경을 쓴 모습인데, 슬라이더에서 타이밍을 맞춰서 서브미션을 수행하는 시스템과 성별간 매치도 재도입됐다. 레슬러가 입는 상처 표현도 전작보다 발전했다.

자신의 캐릭터를 생성해 WWE 세계의 일원이 되는 마이라이즈는 건재하다. 이번에 주인공은 HHH의 부름을 받고 WWE에 1순위로 드래프트되지만, 이내 괴한에게 습격을 다한다. 플레이어는 WWE 슈퍼스타의 커리어를 밟아 나가면서 동시에 WWE를 향한 도전에 맞서야 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지만, RAW와 스맥다운을 전복시키려는 시도가 생기고 주인공과 그의 파트너가 이 싸움에 뛰어든다는 콘셉트다.

안타깝게도 <2K25>에도 공식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는다. 아시아권 언어는 (아랍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압도적 크기의 미국 프로레슬링 시장을 생각해 보면 일견 이해는 가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2K는 다른 레슬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온라인 콘텐츠 '더 아일랜드'를 발표했지만, 이 기능은 기자가 체험한 스팀 버전에는 빠져있다. '더 아일랜드'에 대한 소감을 남기고 싶어도 남길 수 없으니 이 또한 아쉬울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