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게임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개인의 능력도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팀워크다. 큰 게임일수록 여러 명이 일한 작업물이 조화를 이뤄야 좋은 게임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아무리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도 회사의 ‘높으신 분’이 맘에 들지 않거나, 팀원끼리 의견이 맞지 않아 외면당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이 심해지게 되면, 개발자 개인은 점점 게임 개발의 열의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매번 성공하는 게임의 개발사는 특별히 다른 뭔가가 있을까? <언차티드 시리즈>와 <라스트 오브 어스>로 매번 성공을 거둔 게임 개발사 너티 독(Naughty Dog). 여기서 기술-아트 디렉터로 근무했던 앤드루 막시모프는 ‘그렇다.’고 말한다. 24일 NDC에서 그는 “창의적인 오너십 공유 문화에 대해”라는 강연에서 너티 독은 어떻게 팀워크를 위한 소통을 하는지 소개했다. /디스이즈게임 김규현 기자
# 전담 프로듀서? 그런 거 없다.
막시모프 전 디렉터는 강연 도입에서 비유를 하나 들었다. 어항 안에 나이든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에 이렇게 묻는다. “여기 물이 어때요?” 그러자 다른 물고기는 이렇게 답한다. “물이 뭐에요?”
이것은 물이 뭔지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그 존재까지 잊어버리는 상황을 비유한다. 기존 게임 회사에는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매니저와 프로듀서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개발의 모든 진행 상황을 점검해 팀원에게 지시한다. 이것은 대부분 업계에서 당연하게 생각돼 왔다.
하지만 게임 개발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소위 대작 게임인 AAA급 게임에는 개발 인력들이 훨씬 더 많이 동원된다. 이전에는 30명으로 작업했으나, 새 게임을 만들려면 60명이 필요한 식이다. 이런데도 매니저나 프로듀서 한 명이 팀원을 일일이 관리, 소통하는 방법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아이디어나 창의력 그리고 생산성을 향상하기도 어렵다.
이에 막시모프 전 디렉터는 근본적인 경영 방식을 바꿀 수 없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생길 수 있는 환경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너티 독이 선택한 방법은, 프로젝트를 총괄하거나 팀별 작업 현황을 감독하는 특정 프로듀서, 매니저를 두지 않는 것이다.
# ‘왜 ?’로 부터 시작하는 자율성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전체 프로젝트를 통제해 주는 상부 사람이 없어도 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이에 너티 독이 꺼내는 답은 ‘개인의 자율성과 주인의식’이다. 개발자 모두가 스스로 게임에 참여하고 싶은 환경을 계속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막시모프 전 디렉터는 너티 독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 개발자가 자율성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가령, 디렉터가 ‘주인공 캐릭터는 이러이러한 것이 필요하다’, ‘우리 게임은 이런 게 될 것이다’라고 팀원에게 지시하기만 하면, 팀원은 애착을 가질 수 없다. 애착이 없으니 목적의식도 가질 수 없어서 작업물도 디렉터가 지시한 그 이상의 것을 만들 수 없다.
반면 ‘왜?’라는 질문을 각 개발자들이 생각하게 만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왜 캐릭터/게임은 이렇게 해야 하는가?”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하면 캐릭터가 더 낫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게임이 더 낫지 않을까?’ 하고 해결책을 찾게 된다. 자신이 만드는 파트, 심지어 다른 파트라 하더라도 관심이 있다면 더 나은 게임을 위해 더 창의적인 판단을 넣는 것이다.
왜? 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나 결과물을 같은 혹은 다른 팀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너티 독 개발자는 부서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조언하고 소통할 수 있다. 프로그램 팀이라도 아트 팀에 자신의 아이디어나 조언을 전달하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렇게 자신의 과제, 혹은 다른 팀의 과제를 해결하면서 자신이 게임 개발에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는 자율성이 생긴다. 자율성이 생기면, 게임의 구조가 중간에 변경되더라도 즉시 스스로 창의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캐릭터가 슬퍼해야 하는 상황인 스토리가 반대로 바뀌었다면, 개발자들은 알아서 변화를 주게 된다. 개발 과정에 대한 개발자 개인의 주인의식, 크리에이티브 오너십(Creative Ownership)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 열린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
막시모프 전 디렉터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작업물을 평가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의견을 주게 하기 위한 너티 독의 원칙을 소개했다.
투명성
회사 내 모든 사람이 개발 중 작업물을 보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작업 정보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확인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 그리고 작업물을 모두가 보면서 모두가 발전할 수 있게 한다.
포괄성
모두가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명령받은 일에는 애착을 갖기 어렵다. 문제를 공유하지 않으면 주인의식을 갖기 어렵다. 너티 독은 솔루션이 필요한 일에 개발자들을 참여시켰다. 게임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다고 의견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동의하게 된다. 잘못된 결정을 준다 생각지 말고 믿음을 줄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
# 회의 대신 참여를 높여라
그래서 너티 독에서는 최대한 열린 소통을 하며, 회의는 최소화한다. 회의는 개인별로 게임 개발 참여도를 높이기보다 회사가 개인을 감시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티 독은 개발자가 작업을 시작하면 2, 3달간 전혀 체크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은 아무도 이 일을 대신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책임감, 참여의식을 갖고 일하게 된다. 다른 아티스트와 소통, 협업하면서 자신의 파트를 개선하려 노력한다. 역설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유로 더 적극적이게 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확인하는가?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 제약-지원 메커니즘이다. 실수가 생기면 즉시 그걸 보완하게 만드는 것. 막시모프 전 디렉터는 이걸 ‘저글링(Juggling)’으로 표현했다. 각 레벨 태스크 중 가장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팀에 지원하는 것이다.
너티 독은 다른 팀과 일을 할 때 회의 대신 직접 찾아간다. 테스트가 필요하면 다른 팀과 모여 플레이 스루(Play through)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영역의 작업 결과를 확인하고 피드백을 준다. 그리고 전 직원에게 문제를 고민하고 계획할 환경을 준다. 1년에 한 번, 한 가지 문제에 회사 전체가 고민, 개선하는 ‘개선의 날’과 한 계획을 다른 팀과 서로 논의하는 ‘계획의 날’이 그것이다.
# 동등한 팀원 그리고 열정
이렇게 각 개발자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답하고 구하기 때문에 상부에서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리더는 지원만 하면 되는 것이다. 너티 독에는 전담 프로듀서 대신 디렉터와 리더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주 임무는 명령이 아니다. 스스로 일을 한다. 너티 독의 사장은 코딩을, 디렉터는 기획과 코딩을 한다. 모두가 회사 안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 한 게임을 위해 한배에 타고 일한다는 느낌은 회사에 통일감을 준다.
이런 게임 개발의 통일성을 끌어내는 데 필요한 것은 열정이다. 막시모프 디렉터는 너티 독의 채용 과정에서 관심과 열정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모델러를 채용할 때도, 오랜 시간을 들여가며 어떤 구직 희망자가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확인한다. 너티 독에서 일하려는 사람 중에는 추가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회사에서 오래 남았다.
막시모프는 모두가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인의식을 주게 되면 품질과 타협하기가 어렵게 된다. 자기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드레이크의 가슴 털을 신경 쓰는 팬을 고려해 작업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새벽 4시에 와서 자기 작업을 개선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 이런 사람을 보면 디렉터는 일을 재촉할 수가 없다. 우수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발휘할 때는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적인 시간을 더 주고, 과로하지 않게 해야 한다. 태도를 악용하면 열정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어 일하지 않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열정을 잘 관리하고 돌봐야 한다.
# 자율성과 주인의식이 주는 이익
서로 일을 잘하기 위해 작업하고 소통하면 당연히 긍정적인 성과가 나온다. 목적의식이 일치하는 개발자들은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더 좋은 게임을 만들려 한다. 따라서 예상보다 적은 인력을 들이고도 품질을 향상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업무에 대한 높은 소속감은 이직률을 낮추어서 교육에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게임에서도 혁신을 장려할 수 있다. 주인의식을 통해 개인이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혁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결과물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일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줄어드는 것도 장점이다. 한 팀원이 빠져나가도 (그 파트의 업무를 공유한 다른 팀원들에 의해) 지장 없이 일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장기적 리스크가 크게 줄어든다.
# 사실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모든 방향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은 점만 있을까? 막시모프 전 디렉터는 당연히 이런 소통의 과정은 힘들다고 했다.
우선 중구난방 넘치는 아이디어는 주위를 분산시키고, 어떤 아이디어는 쓸모가 없거나 중복되기도 할 것이다. 또 자기 작업물에 자부심을 가져 피드백을 꺼리거나 소통에 적극적이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시모프는 소통을 많이 하는 것은 실수를 줄이는 것이 아닌, 게임의 결과를 극대화하려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더 좋은 아이디어와 결과물을 제공하고, 그것이 게임을 살찌우기 때문에 소통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소통도 결국은 게임을 잘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서 처음 피드백이 좋지 않으면 당연히 속상할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파트, 궁극적으로는 게임이 잘 되기 위한 과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피드백을 일상적으로 받는 환경이라면 오히려 발전을 위해 배울 게 생긴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기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막시모프 전 디렉터는 이번 강연을 통해 스튜디오에 적합한 소통의 도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주문했다. 그리고 모두가 게임에 참여하고 몰입하고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는 강연을 마무리했다.
아래는 강연 후 질의응답 내용이다.
Q: 너티독의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얼마나 걸리며, 적응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A: 자주 반복되는 질문이다. 채용 때부터 자기 주도적인 사람들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당황해서 못하기도 하지만, 두 달 정도 지내다 보면 피드백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돌아가는 방법은 이미 검증받았다. 직원이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못 하면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자신의 시간을 주고 있다. 3, 5개월 정도의 시간을 준다. 적응하는 시간을 주며, 스스로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아무에게 가서 붙들고 물어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적응하지 못했던 사례는 없었다.
Q: 자신의 업무에 관해 확인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하지 않으면 이를 악용할 텐데 어떻게 하는가?
A: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너티 독에서 일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 (포트폴리오부터) 그래서 대부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결혼 하거나 출산을 하면 업무량이 줄어드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업무를 배분한다. 태만 하는 경우는 보질 못했다.
Q: 의견이 갈릴 때는 어떻게 하는가?
A: 서로 증명해야 한다. 자신의 솔루션이 왜 게임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해당 업무를 하는 사람이 선택권을 가지고 다른 의견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Q: 비효율, 혼란이 있을 것 같은데. 직책이 높은 사람이 없으면 최종 프로덕트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A. 너티 독에는 투표가 없다. 왜라는 이유가 있다면 모호성이 없기 때문에 답이 명확해진다.
Q: 수평구조에서는 게임의 성과를 평가하기 어렵지 않나?
A: 모든 리더가 팀원으로 일한다. 그래서 누가 잘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리더들이 별도의 사무실에서 있으면 누가 더 잘하는지 확인하는지 알기 어렵다. 리더의 역할은 팀원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