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게임 디자이너가 하는 정확한 일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게임 개발자나 디자이너로써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무엇일까? 방영훈 게임 디자이너의 강연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게임 개발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나 구직자라면 분명 유용할 강연이다.
강연자 : 방영훈
소속 : 넥슨코리아
발표자 소개
현재 넥슨코리아 / Nexon Korea Project HP의 게임 디자이너로 재직 중입니다. 웹젠, 위메이드, 엔씨소프트, 캡콤코리아, 넥슨게임즈에서 PC, 모바일, 콘솔 등 다양한 플랫폼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외부에 공개된 참여 작품으로는 <썬온라인>, <리니지 이터널>, <몬스터헌터 프론티어 온라인2>, <히트>, <듀랑고> 등이 있습니다.
# 게임 디자이너는 무슨 일 해요?
"게임 디자이너는 남들보다 더 깊은 고민을 오래 해야 하는 자리다"
게임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게임을 디자인하는 직책이다. 게임 디자인은 게임 '개발 과정'의 한 종류인데, 게임 개발 과정은 알면 알수록 상당히 복잡하다. 실제 게임 엔진으로 게임을 개발하거나 모든 개발 과정을 경험해 보면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개발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임 디자인 또한 초반 기획 단계나 아이디어 조립 단계에서만 진행되리라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개발 과정 모든 영역에 걸쳐 반복되는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임 디자인 사이클은 필요한 내용을 설계하고, 설계된 내용이 잘 구현되는지 진행을 관리하고, 구현된 내용이 동작되는지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피드백 내용을 다시 설계하면서 사이클이 돌아간다.
또한, 1인 개발이나 소규모 개발이 아니라면 산업으로써의 게임 개발은 대규모 조직 속에서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그 중에서도 온라인 서비스 프로젝트는 완성과 중단이 없는 무한한 반복이 이루어진다.
# 그러면 "게임 디자인"이 뭐하는 일이죠?
"게임 디자인이란?"은 오래 일한 디자이너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스마일게이트의 이상균 개발자는 2015년 공개된 강연을 통해 "게임 기획은 발상, 설계, 전달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강연자의 언어로 바꾸면 "생각, 정리, 설득"이다. 이를 정리하면 "생각을 정리해서 설득하는 일"이다.
생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Why, What, How로 나뉜다. 왜 해야 하는가? 뭘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세 가지를 고민하는 것이 게임 디자이너다.
간단한 예제를 들어 보자. 디렉터가 "파티 시스템 디자인해주세요"라고 요청했다고 가정하자. 위에서 언급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우리 게임에 파티가 왜 필요하지?(Why), 파티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지?(What), 파티를 어떻게 만들지?(How)로 나눌 수 있다.
파티가 왜 필요할까? 프로젝트 환경을 가정해 보자. 파티가 있다면 플레이어가 여러 명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멀티플레이 게임이라서? 아니면 플레이어 간 진행도와 보상을 공유해야 해서? 혹은 친구와 게임을 할 수 있게 하려고?"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What에 대입해서 생각하면" 인원 제한은 필요할까? 리더는 필요할까? 초대 추방 권한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파티장이 잠수를 타거나 게임에서 튕기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How에 대입하면 "파티 결성 방법이나 권한 구분은 어떻게 하지? 파티장 자동 위임이나 잠수로 인한 재접속 처리는 어떻게 하지?"를 고민해 볼 수 있다.
생각을 했으면 이제 정리를 할 차례다. 예시 프로젝트의 시스템이 모르는 사람과 매칭 하는 것이 기본 설정이라고 가정해 보자. 멀티플레이 게임은 보통 친구와 같이 한다. 그렇다면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파티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탈하거나 게임에서 튕길 때를 대비해 리더 권한을 수동, 혹은 자동으로 넘겨주는 기능이 필요하다.
What과 How는 묶어서 생각할 수 있다. 랜덤 매칭 이전의 사전 구성 그룹을 "파티"라 정의하고, 구성 인원은 1명의 파티 리더와 1~4명의 파티 구성원으로 정한다. 그리고 초대 및 추방, 게임 입장은 파티 리더의 고유 권한으로 설정하고, 리더는 다른 파티원에게 수동으로 자리를 위임할 수 있게 한다. 리더가 파티를 이탈하면 다른 파티원에게 권한이 자동 위임된다.
이런 과정은 글로 설명하면 전달력이 부족할 수 있기에, 게임 디자인 문서를 작성할 때는 이미지 자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편이다. 이를 모두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 흔히 말하는 '기획서'가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설득이다. 보통 '디자인 리뷰'로 불리는 단계다. 여기서는 다른 동료들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설득당하는" 협의도 매우 중요하다. 리뷰는 의견을 서로 나누기 위해 진행되기 때문이다.
# 초안 작성을 위한 실무 꿀팁
다음은 초안 문서 작성을 위한 실무 팁이다.
1. 디자인 의도를 날카롭게 벼르자!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리뷰를 진행하다 보면, 늘 요소와 방법 면에서 더 좋은 대안이 발견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 의도, 즉 Why를 명확하게 다듬고 세우는 일이다. 디자인 의도를 확실히 정하지 못하면 리뷰 과정에서 포류하기 쉽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 보자. 디자인 의도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해 "다른 게임도 파티 리더 있는데, 우리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누구나 초대할 수 있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하면 "그러게요...?"하고 설득당하기 쉽다. 여기서 또 다른 구성원이 "파티 리더가 없는 게임도 있던데요?"하면 할 말이 부족해진다. 명확한 목표가 없다면 갈팡질팡하게 된다.
반면, 목표가 명확하면 다른 제안이나 반문에 흔들리지 않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흡수해 보완할 수 있다.
이번에는 "기능 권한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해요. 그래서 파티 리더가 필요해요"라고 명확히 의도를 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누구나 초대하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요?"에 대해 "초대는 모두가 하면 편하겠네요. 대신, 매칭 시작은 아무나 하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답변할 수 있다. 기능 권한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견을 낸 입장에서도 "아, 그럼 리더가 확실히 필요하겠네요"라며 납득하기 편하다.
2. 디자인 개요를 요약하자
디자인 문서를 한 번이라도 작성한 사람은 문서 맨 앞에 디자인 의도를 적고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연자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디자인 개요"를 적는다고 전했다.
디자인 개요는 간단히 말해 세 줄 요약이다. 개요를 맨 앞에 적고, 의도와 세부 디자인을 정리하는 순서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업무 문서는 두괄식이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디자인 개요 또한 일종의 배려다. 다른 동료가 문서를 정독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요약을 해 주는 것이다.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해야 개요를 쉽게 작성할 수 있다. 길면 독자 입장에서 집중하기 어렵다. 짧게 요약하기 어렵다면 디자인 자체에 군더더기가 없는지 다시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령 앞서 언급한 파티 시스템 예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매칭 전 다른 플레이어를 4명까지 파티에 초대할 수 있다.
2. 최초 초대자인 리더만 추방과 매칭 시작이 가능하다.
3. 리더 권한은 수동 위암과 이탈 시 자동 위임이 가능하다.
# 문서만 쓰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다음은 문서 작업(설계) 이후 진행되는 '진행 관리'에 대한 내용이다.
진행 관리 단계에서는 프로그래머나 아티스트에게 구현이나 제작 요청을 하고, 또는 다른 유관 부서에 업무 협조를 요청한다. 그리고 요청한 내용이 잘 진행되는지, 또는 질문이나 변수는 없는지 살피고 대비하게 된다.
핵심은 '계속 다듬어가는 일'이란 점이다. 게임 디자인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이런 진행 관리는 보통 PM(프로젝트 매니저)가 담당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책임과 협업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서에 무심코 적은 한 줄이 누군가의 고뇌와 철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요청한 디자인 문서에 "광장의 수많은 인파가 웅성거린다"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제작 담당은 "NPC가 다 똑같으면 이상하겠지? 여러 세트를 만들어야겠네", 배치 담당은 "수많은 인파면 몇 명 정도지? 30명은 넘어야 하나?", 대사 담당은 "대사는 몇 개나 만들어야 하지?"라며 머리를 움켜쥘 수 있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는 실제 작업할 동료를 의식하며 세심하게 디자인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디자이너는 글자 몇 개만 고치면 될 수 있지만, 실무자는 엄청난 분량의 에셋을 일일이 수정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게임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죠?
먼저 '국, 영 수'다.
국어는 모국어다. 능통해서 손해 볼 것이 없다. 게임 디자이너는 협업이 중요한 만큼 국어 능력이 중요하다. 보통 모집 요강에 작성되는 "원만한 의사소통 능력"이 여기 해당한다.
영어는 게임 개발 산업 자체가 영미권 문화에서 들어온 것이기에, 앞선 연구 결과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변수 이름을 정하는 것 자체도 생각보다 중요한 일인데,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더 정확한 이름을 지정하고, 잘못된 이름에서 올 수 있는 오해를 줄일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해외 지사와 협업할 기회가 많기에 더욱 중요하다.
수학도 중요하다. 밸런스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게임 디자이너라면 숫자를 다루는 일을 굉장히 많이 겪게 된다. 이때 탄탄한 수학적 지식이 있어야 이를 더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다. 또한, 수학적 지식은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출판된 게임 디자이너에 관한 책과, 각종 강연 자료도 큰 도움이 된다. 지난 NDC에서 진행됐던 강연은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기에 이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게임 디자인 사고 훈련"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것도 좋다. 다른 게임의 디자인을 분석하는 훈련인데, 해당 훈련법에 대해서는 2018 G-Con에서 공개된 다른 강연을 참고하길 권했다.
방영훈 강연자는 다른 모든 직군이 그렇듯이, 게임 디자이너 또한 만능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개발은 여러 직군이 힙을 합쳐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특히 게임 디자인은 누구나 참여하고 제안할 수 있는 특성이 있어, "나만 할 수 있다"는 베타심을 경계해야 한다. 동료들과의 협업과 존중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게임 디자인은 엄연한 전문 영역이다.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완성은 결국 디자이너의 전문성이 결정한다. 좋은 게임 디자이너가 없다면 결국 타 작품의 열화-복제가 최대 결과값이 된다. '기획자 무용론'이 있긴 하지만, 이는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은 잘못된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잘못된 디자이너에게 받은 일종의 상처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