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앤 파이터> 오픈 베타 시절 네오플에 입사해 16년간 근무한 백영진 개발자는 ‘게임업계 1호 정년 퇴직자’로 잘 알려진 기념비적 인물이다. 현재는 국내 최초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NDC22(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세 번째 날 백영진 개발자는 ‘게임회사 정년퇴직 하기’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나섰다. 그는 어떻게 처음 게임 개발에 발을 들였으며, 업계에서 보기 드문 정년퇴직을 실현할 수 있었을까? 개발자의 꿈을 꿨던 유년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여정, 그리고 후배 개발자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직접 들어보자.
강연자 : 백영진
소속 : 코빗 기술 연구원
발표자 소개
2021년 12월 던전앤파이터 게임을 서비스하는 네오플에서 16년간 근무 후 정년퇴직 하면서 국내 게임업계 최초 정년퇴직자가 됐다. 현재는 국내 최초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빗(korbit)에서 기술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그가 개발자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2학년이었던 70년대, 어울려 놀던 동네 골목대장으로부터 ‘미래 세계’에 대해 듣고 나서 부터다. 컴퓨터에 묻기만 하면 답이 나오는 세상이 온다는 거짓말 같은 말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고 이후로 컴퓨터 업계 진출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꿈에 맞춰 전자공학과나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원했지만, 성적 문제로 농과대학에 가게 된다. 졸업 후에도 가난한 집안 사정 탈출을 위해 취업으로 내달렸다. 토목 전공을 살려 토목 현장에 취직하려 했지만, 건강 문제로 군 면제인 점이 발목을 잡아 구로공단의 정밀 기계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월 10여만 원을 받으며 주야간 2교대 업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간 밤낮 바뀐 생활을 하니 여자 친구도 떠나갔다. 어느 날인가 혼자 술을 많이 마시다가 ‘기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고생하겠다’고 마음먹었고, 모아둔 급여로 청계천에서 애플 2를 구매하면서 컴퓨터 공부가 시작됐다. 낮에는 공장일을 하고 밤에는 베이직을 공부하며 재미를 느꼈다.
결국 본격적인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자 청계천 컴퓨터 가게 사장을 붙잡고 애원 끝에 판매원으로 일하게 된다. 지식재산권 개념이 희박했던 당시였고, 플로피 디스크에 소프트웨어 넣어 팔곤 했는데 이때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접하면서 컴퓨터 기초 지식이 쌓이기 시작했다.
3년 뒤엔 판매원을 그만두고 컴퓨터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소형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꿈꾼 ‘미래 세계’의 모습은 쉽게 오지 않았고, 다시 만난 대학 시절 지도 교수님의 권유로 토목 기업에 취직하면서 꿈으로부터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해당 기업에서 토목 데이터를 전산화하는 일을 맡으면서 컴퓨터를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3년 후인 1991년 회사를 떠났고 이때부터 당시 블루오션이었던 PC 온라인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개발 지식은 매우 부족했다.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낮에는 게임을 개발하고, 밤에는 학생들 공부 도와주는 생활이 시작됐다. PC게임 습작을 완성해보기도 했다. 윈도우가 나온 지도 얼마 안 됐고, 인터넷 막 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기회는 마흔 나이에 처음으로 찾아왔다. 때는 2000년대, IT 붐으로 ‘닷컴 시대’가 도래했다. IT 인력이 워낙 부족해 프로그래머라고만 하면 경력, 신입 막론하고 무조건 취직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게임업계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불행히도 초기에 입사했던 게임 회사들은 전부 오래 가질 못했다. 게임이 나오기 전 회사가 망하거나, 월급을 못 받거나, 쫓겨나온 경우까지 있었다. 몇 개월, 혹은 1년씩 다니다가 이직하는 일이 잦았고, 3년 근무가 나름 최장이었지만 그 회사마저 폐업했다.
그러던 중 주변의 추천으로 네오플에 입사하게 된다, <던전 앤 파이터>가 막 오픈베타를 시작한 시기였다. 입사 전 <던전 앤 파이터>를 해보니, 이전까지의 MMORPG에 비해 화려한 스킬과 액션이 가미된 액션 RPG였다. 한눈에 ‘이 게임은 성공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입사 후에는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서버를 단독으로 책임져 개발하기도 했다. 서버 장애가 발생하면 홀로 원인 분석을 해야 했고, 주 단위로 패치 할 콘텐츠도 직접 개발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만족했다.
이렇듯 <던전 앤 파이터>의 동시접속자가 늘어나기까지 우여곡절은 많았다. 결국 성공해서 대중의 인정을 받았을 때는 팀원 간 서로 축하했고 서로의 실력을 인정해줬다. ‘우리가 최고가 되는 순간’을 맛봤다. 그렇게 꿈을 이뤘다.
백영진 개발자는 네오플 안에서 직책이 많이 바뀌었다. 팀원으로 처음 입사해 파트장, 팀장, 다시 팀원이 됐다. 그는 “네오플이 급변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있었던 변화다. 내가 파트장, 팀장을 맡을 만큼의 능력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팀장이 되었을 때 언제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가 와서 다시 팀원이 됐다”라고 회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팀장 일을 하다가 팀원이 되고 나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팀 내에 자신을 향한 오해가 쌓였고, 심지어 다른 팀을 통해서도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들었다. 긴 시간 쌓아온 노력이 단숨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개발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그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
대신 팀을 옮겨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서 마주치고 호흡을 맞추면서, 자신을 향한 오해를 풀어나갔다. 스스로 잘못했던 부분과 고칠 부분도 찾았다. 오해가 쌓였던 기간만큼 함께 시간을 보냈고, 결국 예전과 같은 안 좋은 이야기는 들리지 않게 됐다.
자신의 문제는 한 마디로 ‘서비스 정신’의 부족이었다. 서버 프로그래머로서 그는 주로 기획자, DBA, 클라이언트 프로그램, QA 파트와 접촉했었다. 그리고 이들과 저마다의 이유로 충돌했다.
기획자는 게임의 재미를 중점 삼아 기획하므로, 구현을 맡은 프로그래머와 충돌이 잦기 마련이었다.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도 클라이언트 구현이 우선이다 보니 인터페이스, 패킷 설계 등에서 서버 프로그래머와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도 했다. QA 파트 역시 테스트 과정에서 과거 사례를 들며 버그 발생 이유를 따져 묻거나, 테스트 편의성을 위해 지연 명령 같은 요청 사항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요청 사항이나 기획적 요청 사항에 대해, 서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나 서버 부하 등을 이유로 ‘구현하는 데 어려움 많다’고 거절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기획자는 이용자의 재미를 최우선시하기 때문에, 서버 프로그래머 역시 기획 내용을 가장 먼저 생각해서 개발하는 게 맞는다는 게 지금의 생각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서버 프로그램상 구현 불가능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조금은 권위적이고, 서비스 정신도 부족했다고 그는 돌아본다.
현재 게임 트렌드는 PC, 콘솔에서 온라인과 모바일 거쳐 VR/XR을 이용한 메타버스로 옮겨가는 중이다. 게다가 P2E라고 하는 새로운 물결도 일고 있다. 또한 과거 게임 개발 언어는 C, C++이 메인 이었으나 지금은 Python, Kotlin, Rust, Go 같은 언어들로 도 가능해졌다.
백영진 개발자 자신은 과거 C, C++로 게임을 개발했지만,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필요한 앱을 직접 만들어보거나,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사실 빠르게 변하는 게임 플랫폼과 개발 언어 모두를 다 익힐 수는 없다. 다만 관심 가는 트렌드 안에서 습작을 만들어볼 수 있고, 이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기본을 익히고 통달하면 변화하는 트렌드에도 적응하기 쉬워진다. 반면 기본이 되어있지 않고 방향이 잘못된 개발자는 새 트렌드를 배울 때도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그는 말한다.
백영진 개발자가 보기에 넥슨은 업계에 뒤지지 않는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넥슨 그룹 내 조직들마다 조직 문화 차이가 조금씩 있겠지만, 최근에 도입된 ‘님’ 호칭 문화는 특히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뛰어나면 팀장, 파트장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더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내려와 물러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자 발전하는 조직이다.
실제로 자신도 언제든 그럴 생각으로 팀장을 맡은 뒤까지 개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현재 네오플에는 비슷하게 팀장에서 팀원이 됐지만 잘 적응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제 게임 업계도 과거와 달리 팀 내 평균 나이가 점점 올라가서 40, 50세 개발자가 흔해졌다. 그렇지만 정년퇴직까지 근무할 수 있는 개발자는 행복한 경우다. 대부분의 개발자가 40세 50세가 되기 전 업계를 떠난다.
백영진 개발자는 “프로젝트 성공 여부에 따라 이직과 전배(전환배치)를 밥 먹듯 하는 게임 업계 특성상 1, 2년 후도 내다볼 수 없으니 정년퇴직은 꿈도 못 꿀 일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들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도 정년퇴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처 상상하지 못했었다. 여기서 개인적 바람은, 건강이 허락하고 능력만 뒷받침되는 인력이라면, 정년을 넘겨서도 회사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회사들이 정년 연장을 고려해주는 것이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개발 인력은 점점 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개발자들도 최근 생겨난 노조를 통해 이런 문제를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백영진 개발자 자신은 제2의 인생 마라톤을 가상 자산 거래소 코빗에서 시작한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같은 업계에서 다시 시작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새 도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많은 것을 배우는 중이다. 게임 업계에서 배운 서버 지식을 코빗 서버에 적용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 중이다.
백영진 개발자는 “내가 속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운 좋게 좋아하는 일도 실컷 하고 꿈도 이뤘다. (하지만) 커리어 관리는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경력 관리가 되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게임 개발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면 힘든 일을 견디다 못해 네오플을 나가서 전혀 다른 분야, (이를테면) 치킨집을 했을 것 같다. 그러면 내 커리어 관리는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일을 끝까지 해낼 힘이 생긴다. 커리어 관리는 중요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을 뿐,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직업 선택’이란 결국 자신의 남은 인생을 선택한 직업과 맞바꾸는 일이다.
MZ 세대의 세상은 베이비부머의 세상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게임업계의 미래는 더 불확실하다 보니 업계인들은 어떻게 경력을 관리할지 당연히 고민이 많다. 이때 ’커리어 관리’의 방법이 있다면 그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중간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면 경력 단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일을 계속하면 일에 통달하게 되고, 관련된 다른 일까지 연관 지어 쉽게 접근 가능해진다. 결국 해당 분야에서 ‘롱런’해서 꿈을 이루게 된다.
박영진 개발자는 인생 후배들을 향한 응원의 말과 함께 강연을 맺었다. 그는 “용기 있는 자만이 자유를 얻게 된다. 여러분이 선택한 꿈은 용기 있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시간과 맞바꾸는 일이니,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나.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