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사람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대신 원칙은 있어야 합니다”
실패를 위해 서비스하는 게임은 없다. 하지만 10명의 사람이 일하면 1명쯤은 실수하는 사람이 생긴다. 사람이니까, 게임도 사람이 만드는 서비스니까 실수는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화가 난 상대방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보이는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모바일 <던전앤파이터>에서 신규 개발 SF 팀장을 맡고 있는 이원만 개발자는 과거 <던전앤파이터> 라이브 팀에서 ‘개발자 원이’란 이름으로 유저들과 소통했다. 이원만 팀장 또한 실수를 했다. ‘자이언트’ 캐릭터의 스킬을 잘못 설명하는 바람에 커뮤니티에서 큰 질타를 받았다.
그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못은 인정하되, 섣부른 변명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여겼다.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밸런스와 점검, 기타 부정적인 이슈로 화가 난 유저들에게는 신뢰를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믿었다. 보다 나은 <던전앤파이터>가 되기위한 라이브 팀의 노력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NDC 현장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디스이즈게임 김영돈 기자
# 변하는 시장에 맞서지 마라, 위험 줄이는 ‘소극적 대응’
이원만 팀장은 유저 대응의 필요성을 설명하기에 앞서 ‘이카루스 패러독스’라는 비유를 들었다. 자신이 만든 날개 덕분에 섬을 탈출할 수 있었던 이카루스는, 결국 날개 때문에 태양에 가까이 가서 죽었다.
그는 온라인 게임도 언제든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제의 정답은 오늘의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시장은 변하고 유저의 성향도 바뀐다. 오랜 시간을 들여 진득한 재미를 주는 게 장점이던 MMORPG가, 어느새 느린 템포 때문에 모바일게임에 밀려나는 것처럼 말이다.
<던전앤파이터>의 라이브 서비스도 변화를 겪었다. 이원만 팀장도 유저를 대응하는 방법에서 적극적인 모니터링과 커뮤니케이션이 ‘정답’이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커뮤니티를 찾아가 이슈마다 대응을 하고, 유저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커뮤니케이션해도 오해는 생기고, 오히려 적극적인 소통이 화를 부른 경우도 있었다.
유저의 의견을 듣는 것은 좋았지만, 개발자의 입장에서 유저 요구를 100%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누군가의 피드백은 반영되고, 누군가의 피드백은 수용되지 않는 상황은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그는 대응 원칙을 수정하기로 했다. 이전의 방법이 ‘적극적 대응’에 가까웠다면, 이슈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소극적 대응’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은 좋은 일을 나서서 자랑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했다. 개발자가 자주 댓글을 남기면, 부정적 이슈에 침묵하는 모습이 도드라진다. 즐거운 일에서 너무 신내지 않고, 사과할 일에는 신중하고 깔끔한 피드백만 남기는 태도로 바꾸니,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니터링까지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지켜보되 신중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데이터와 유저 대응은 '상호 보완' 관계
커뮤니티와 사람을 대하는 유저 대응과 게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밸런싱은 서로 연관 없는 분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원만 팀장은 두 분야가 협업할 때 보다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유저 의견에 의존하는 대응은 게임에 대한 직관과 통찰력은 가질 수 있지만 침묵하는 대중을 파악하지 못한다. 데이터 분석은 유저의 실제 게임 이용 정보를 기반으로 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을 파악할 수 있지만 오판의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유저 소비가 급격히 늘어난 콘텐츠를 판단할 때, 진짜로 재미있어서인지 혹은 마케팅이나 이벤트의 성과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원만 팀장은 <던전앤파이터>의 경우 ‘슬로트 발전소’ 던전을 개선할 때 두 분야의 협업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슬로트 발전소는 <던전앤파이터>의 파밍 던전이다. 하지만 같은 레벨의 던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입장 선호도가 떨어지는 곳이었다. 데이터는 슬로트 발전소의 부진을 말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저 대응팀은 커뮤니티 의견을 통해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을 수 있었다. 슬로트 던전은 1회 플레이를 위해 기획된 던전이라서 반복 클리어 시의 불편함이 다른 던전에 비해 컸다. 유저 피드백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레벨 디자인과 보스 패턴을 간결하게 하는 부분에서 상당한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
# 디테일을 개선하고 싶다면 개발자부터 유저가 되자
라이브 서비스를 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의 피로도를 줄이는 방법은 뭘까. 이원만 팀장은 개발자가 만들고 싶은 게임과, 유저가 원하는 게임을 일치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던전앤파이터>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게임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업무 시간에 <던전앤파이터> 플레이를 허용하는 캠페인을 실시했다. 시험 기간에 공부와 관계없는 모든 활동이 재미나듯, 업무 시간엔 일과 관련 없는 모든 일이 재미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시도였다.
구성원들이 게임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겨났다. 개발자들이 레이드를 돌면서 본인들이 불편한 것을 자발적으로 개선하기 시작했다. 이는 유저와 개발자 모두가 즐거워하는 게임으로 이어졌다. 업무 차원에서는 미뤄졌던 디테일에 관한 개선들이 유저 니즈를 정확하게 관통했던 셈이다.
‘미러 아라드’ 업데이트 또한 비슷한 맥락이었다. 개발자가 유저의 입장이 됐기에 던전 밸런스는 트렌드에 맞게 개선하면서도, 추억이 될 BGM과 그래픽 등 감성적인 영역은 그대로 남길 수 있었다.
# 어떤 상황에도 ‘재미’라는 큰 원칙을 잊지 말자
이원만 팀장은 유저 대응에 정답은 없다고 말했다. 효과적인 방법은 있었지만, 어제의 정답은 이미 오늘의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자들이 모든 업데이트가 큰 틀에서 게임의 재미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게임에게 있어 콘텐츠 수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저의 신뢰다. 게임에 대한 신뢰는 콘텐츠 못지않게 더 많은 유저를 유입시킬 수 있다. 그는 “이 게임은 적어도 믿음을 지킨다”는 무형의 믿음이 있다면, 유저는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원만 팀장은 마지막으로 유저 대응을 비롯한 모든 운영 활동이 ‘성공’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유저와 개발자 모두에게 게임은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이 그것을 즐기는 사람에게 추억을 주는 존재라고 믿는다. 개발자가 조금만 욕심을 내면 유저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조언과 함께 강연을 마무리했다.
아래는 현장에서 진행된 간이 질의응답 내용이다.
디스이즈게임: 라이브서비스에서 개발자와 유저의 줄다리기는 피할 수 없다. 밸런스와 밀접한 유저 피드백이 들어오는 경우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원만 팀장: 유저의 피드백을 100% 반영할 수 있는 게임은 없다. 커뮤니티의 의견에 대해 유저 대응팀도 공감 하지만, 개발진으로써 게임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진심 어린 의견을 그냥 넘기지는 않는다. 직접 바꾸지 못해도 담당 부서에 건의 사항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다.
‘DNF개발자 원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유저 대응을 했던 적이 있다. 실수나 오해가 생겼던 적은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남 격투가의 전직 ‘자이언트’의 스킬에 대해 잘못 설명한 적이 있었다. 개발자가 스킬을 잘못 말하는 건 큰 실수다. 당연히 유저들은 화를 냈고, 대응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유저는 말로만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그다음 패치를 더욱 신경 써서 준비했다. 당장 <던전앤파이터>를 그만두겠다던 유저도 꾸준함을 보여주니 돌아오더라.
<던전앤파이터>는 점핑 캐릭터 이벤트를 자주 실시하는데, 만족할만한 지표를 얻었는가?
내가 <던전앤파이터> 팀에 있는 동안 만큼은 점핑 이벤트가 큰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 성공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유저들은 여전히 성장에 대한 니즈가 강하구나’와 동시에 ‘점핑 캐릭터 없이 신규 캐릭터를 키우는 건 엄청나게 지루한 일이구나’라는 고민이 들었다. 이런 피드백은 성장 구간 개선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많은 유저가 플레이하는 게임은 유저 목소리도 다양한데, 어떤 의견이 진짜 유저의 목소리에 가까울까.
정답은 없다. 유저들도 개인의 의견보다 하나로 모인 여론이 업데이트에 적용되기 쉽다는 걸 안다. 모니터링 팀도 커뮤니티에서 많은 공감을 받은 글 위주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