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 날 다 같이 영화를 봤습니다. 저희도 절대 스토리를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볼 수밖에 없죠. 영화를 다 봐야만 콘텐츠를 만들 수 있거든요"
2015년부터 개봉하는 작품마다 히트하면서 가장 핫한 IP로 떠오르는 '마블'. 누구에게나 물어도 장르를 막론하고 가장 인기있는 IP로 손꼽힙니다. 지난 24일 개봉한 신작 <어벤져스: 엔드게임> 역시 첫날 관객 134만을 기록하며 이례 없던 흥행을 예고했는데요.
철저한 보안을 중요시하는 글로벌 IP 마블과의 협업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될까요? <마블 배틀라인> 이희영 디렉터가 세계적 IP 마블을 활용해 게임을 만들면서 겪은 외부 IP와의 협업 과정과 일반 게임 개발과의 차이를 공유했습니다.
데브캣 스튜디오 이희영 디렉터
# 마블 배틀라인, 마비노기 듀얼에서 얻은 교훈과 글로벌 IP의 결합
<마블 배틀라인>은 마블과 넥슨의 첫 계약 타이틀이자 <마비노기 듀얼>을 근간으로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마비노기 듀얼>은 2년의 개발 끝에 2015년 6월 론칭된 게임이죠. 글로벌 서비스, 크로스 플랫폼으로 서비스됐으며 출시 초 준수한 평가를 받았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1년 뒤, 출시 초반 국내 시장에서의 뜨거운 반응은 빠르게 식었습니다. 이렇게 얻은 교훈을 통해 대형 피처 위주로 게임을 개선,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했죠. 덕분에 국내 대비 해외 유저 하락 폭을 완화할 수 있었죠.
사실 모바일 게임에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오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PC 게임 중에는 <바람의 나라>, <메이플 스토리>처럼 긴 시간 서비스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한번 유저 유입을 만드는 사례가 더러 있었죠.
반면 모바일 게임 유저들은 게임이 개선되기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초기에 유저 풀을 만들지 않으면 두 번째 기회를 갖기 어렵죠. <마비노기 듀얼>의 경우, 인게임 문제도 있었겠지만, 메르스 사태 확산으로 첫 오프라인 대회를 취소해 초기 유저 풀을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렇기에 보통 모바일 게임은 전작의 장점을 반영한 후속작을 통해 성과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게임을 라이브합니다. <마블 배틀라인> 역시 <마비노기 듀얼>을 서비스하면서 얻은 교훈을 이식해 개발에 착수하게 되죠.
서비스뿐 아니라 IP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마비노기>는 한국과 일본 위주로 인지도 형성된 IP입니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서비스하지만, 규모 대비 유입이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죠. 하지만 TCG는 장르 특성상 북미와 유럽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습니다. 그렇기에 북미와 유럽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IP가 필요했죠.
글로벌 마켓에서 사용할 수 있는 IP가 필요했던 데브캣 스튜디오는 전 세계 다양한 시장에 <마비노기 듀얼>의 비주얼과 게임성을 어필하며 IP 홀더들과 만나게 되죠. 일본의 경우 국가별로 따로 계약을 해야 한다던지 등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2015년 12월, LA에서 신규 IP 계약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 오게 됩니다. 바로 마블입니다.
# '마블을 마블이라 말하지도 못하고' 철통보안 마블과 협업하기
데브캣은 <마블 배틀라인> 출시 시기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일의 중간 시기로 잡아뒀습니다. 개발에 집중한 후 런칭 날짜를 정하는 일반적인 개발 프로세스와는 정반대죠.
기간이 정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했기에 출시를 연기할 수도 없었고 일정 역시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개발팀은 <마비노기 듀얼>의 시스템을 베이스로 하되 그래픽에 어떤 변화를 줄지, 물량에 얼마나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게 되죠.
하지만 마블과의 협업을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게임 플레이를 만든 후 스토리를 구상하는 넥슨의 작업 방식과 달리, 마블은 게임의 스토리와 설정을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죠.
마블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이야기는 현재를 배경으로 할 것 ▲모든 캐릭터는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질 것 ▲싸움에는 타당한 동기가 있을 것. 모두 이야기와 설정에 관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구조 역시 메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캐릭터 간의 관계, 사건이 전개되는 촘촘한 스토리를 원했죠.
또 하나 개발팀을 힘들게 했던 것은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빌드가 나오기 전까지 IP 사용 여부를 알릴 수 없는 점입니다.
데브캣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난감했습니다. 프로젝트 구인을 위해 사람을 모집해야 하지만 마블이라는 매력적인 IP를 어필할 수 없었죠. 결국 회사는 '누구나 알만한 글로벌 IP'처럼 간접적으로 알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 스토리부터 아트워크까지, 마블과 데브캣의 협업 사례
<마블 배틀라인> 개발에 착수하면서 데브캣 스튜디오는 마블과 다양한 방면으로 꼼꼼한 피드백을 주고받았습니다.
특히 스토리와 설정에서도 많은 조언이 있었다는데요. 최초 데브캣 스튜디오는 마블 세계관에 등장하는 '인피니티 스톤'을 게임 재화로 사용하려 했습니다. 스토리 전개에서 인피니티 스톤이 깨지고, 그 조각이 자원으로 사용된다는 설정으로 말이죠.
하지만 마블에서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마블 설정상 인피니티 스톤은 절대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두 회사는 인피니티 스톤 대신 '코스믹 큐브'를 재화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는 마블 쪽에서 고민하며 직접 제안한 내용이라고 하네요.
<마블 배틀라인>의 스토리 파트는 '알렉스 어빈' 작가가 함께 작업했습니다. 알렉스 어빈은 소설 버전 마블을 집필 경험과 게임 시나리오 경험이 있는 마블 공인 작가입니다. 코믹스 원작을 알기 때문에 캐릭터의 말투까지 섬세하게 교정받을 수 있어 재미있는 작업이 됐다고 하네요.
마블과 작가 모두 영어가 주 언어이기 때문에 <마블 배틀라인>의 스토리는 모두 영문으로 작성됐는데요. 영어를 모르는 데브캣 스튜디오 직원도 마블 측 의견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잦았다고 합니다.
아트워크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고려된 아트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 코믹북 스타일, 또 하나는 페인팅 스타일입니다.
미국 코믹북 스타일은 역동적인 액션과 표정을 나타내기 유리합니다. 하지만 코믹스 팬들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고, 코믹스 팬들이 게임 팬으로 이어질 확률은 미지수였습니다. 또한 마블 영화로 유입된 일반적인 팬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알 수 없었죠.
페인팅 스타일은 반 실사풍의 일러스트로 다소 무거운 화풍입니다. 마블 영화 팬들에게도 친숙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결국 데브캣 스튜디오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하기로 합니다. 코믹스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액션, 페인팅 스타일의 정적이면서 무거운 깊이를 담아내죠. 동양풍 그림체에 익숙한 작가들이 많아 이를 계속 인식하며 작업했다고 합니다.
마블은 아트워크 검수 과정을 통해 주로 동양풍 그림체의 작가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피드팩을 줬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2년 정도 진행하며 생각과 스타일에 대한 공유를 많이 했고, 현재도 꾸준히 협업하며 적용하고 있다네요.
그렇게 개발된 <마블 배틀라인>은 2018년 6월 소프트 론칭됩니다. 드디어 데브캣 스튜디오도 '마블 IP 게임 만든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죠.
마블의 철통 보안은 서비스 후에도 여전합니다. 지난 3월 개봉한 <캡틴 마블> 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는 스토리를 알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비중이 높아 보였던 인물이 실제로는 비중이 적어 일러스트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최근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 역시 개발팀이 영화를 본 후에야 제대로 업데이트를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프로모션 영상에서도 사전에 예고됐던 타노스나 어벤저스 영웅들의 등장 말고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