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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크래프톤: 포괄임금제와 리부트 셀로 얼룩진 '자율과 책임'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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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1-02-16 15:55:02

지난 2월 3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크래프톤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며 "노동자의 과다 근로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을 게시한 아이디 'krafton_wk'​에 따르면, 게시물이 올라간 이후 작성자에게 수십 건의 제보가 날아왔다.

 

주장을 요약하자면 "크래프톤에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굉장히 빈번하다". 이 모든 노동은 포괄임금제에 묶여있어 직원들은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의 리더들은 '사용자'로 분류되어 상당히 긴 업무 시간을 소화하고 있고, 그 아래 팀원들도 같은 환경에 놓여있다.​ 크래프톤에 합병된 펍지 직원들은 "입사 때 약속받았던 각종 복지가 축소됐으며,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해당 게시물이 블라인드에서 한 차례 주목을 받은 이후, 기자는 10여 명 이상의 전·현직 크래프톤 직원을 취재했다.​ 유선통화, 카카오톡 메시지 등의 방법으로 대상자들을 인터뷰했다. 모두 게임 업계 종사자로, 신변 노출을 원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서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됐다증언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원증, 명함 인증을 통한 신분 확인 과정을 거쳤음을 밝힌다.

 


 

 

# 아직도 포괄임금제 유지 중, 법정 근로시간 지속적으로 넘겨온 노동자들

 

기자가 접촉한 직원들은 크래프톤에서 일하면서 법정 근로시간(40시간, 최대 52시간)을 넘긴 경험이 있다고 증언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이 전·현직 크래프톤 직원이라는 사실을 밝힌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왔음과 그에 따른 보상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개별 조직에 따라서 적게는 55시간 일했다는 사람부터, 많게는 80시간 가까이 회사에 체류했던 기록을 인증한 사람도 있었다. 개중에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메신저로 업무 지시와 이행이 오고 간 내용도 확인된다.​ 주말 오전에 카카오톡으로 출근을 지시했고,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이렇게 크래프톤 안에 초과 근무가 만연했지만, 이에 대한 수당을 받았다는 직원은 없다. 회사가 아직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은 하나같이 추가적인 노동을 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형편을 토로했다.

 

포괄임금제는 기본임금을 미리 산정하지 않고, 시간 외 수당을 함께 산정해 월급을 지급하는 제도다.​ 버스 기사 등 정량적인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위해 마련됐지만, IT 업계에서는 '공짜노동'의 주범으로 지적되어왔다. 2019년,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등 대규모 게임 기업은 포괄임금제를 폐지했지만, 크래프톤 직원들은 포괄임금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사의 창업자인 장병규 이사회 의장은 2019년 10월, 공개 석상에서 "주 52시간제가 노동자 건강과 기본권을 보호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의도치 않게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발언을 하면서 장병규 당시 4차산업혁명위원장은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크래프톤은 포괄임금제를 통해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일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걸까? 전·현직 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업계의 일반적인 추세와 달리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리더가 남아있으면 팀원들은 자의와 별개로 함께 남아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팀의 리더들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 분류되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도 했다.

 

한 응답자는 "주니어의 입장에서는 시니어 개발자들이 남아있는데, 혼자 집에 가기엔 눈치가 보인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말로는 집에 가도 된다고 하지만, 일이 쌓여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몸이 좋지 않아서 휴가를 쓰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서 쓸 수 없었다"는 말도 있었다. 크래프톤은 '자율과 책임, 권한과 책임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그 슬로건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주니어 개발자들에게 '자율'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1주일에 적게는 50시간에서 많게는 80시간 일한다는 한 응답자는 "초과 근무에 대해 보상휴가를 지급하지만, 그마저도 일이 바빠서 사용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회사로부터 야근, 주말 근무에 대한 보상휴가를 받아도 격무에 시달리는 탓에 제때 쓰지 못하고 있다는 것. 크래프톤은 보상휴가를 2개월 내에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개월이 지난 이후부터 직접 HR 팀에 연락을 취해서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이마저도 팀 스케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기 위해 일한 시간을 조작한 사례도 있었다. 통상적인 경우와 같이 업무망 PC에 접속할 때 근무 시간이 체크되는데, 정정 신청을 통해 자정이 넘도록 일했지만, 자정에 퇴근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는 등의 증언이 여럿 나왔다.

 


거의 대부분 승인되는 정정을 통해 55시간을 넘게 일했지만, 시간을 깎고 깎아서 51시간 55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한 직원은 정정 요청을 통해 프로그램 상으로는 자정에 퇴근했다고 기록했지만, 카드 사용 내역에는 새벽 4시가 넘어서 택시를 타고 퇴근한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최근까지 크래프톤은 필수 재택근무 기간을 유지했다. 재택근무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매일 점심값을 받았지만, 출퇴근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메신저로 업무를 주고 받는 탓에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답변을 남겼다. 업무 시간은 VPN 우회 등을 통한 업무망 PC 접속으로 산정되거나 수동으로 입력하고 있다는 등 인터뷰이마다 답변이 달랐다.


이미 고용노동청은 2019년 크래프톤과 피닉스에 장시간 근로, 취업규칙 미 신고, 휴일 근로 등으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시정지시를 내린 바 있다.

 

 

 

# 리부트 셀: '장인정신'과 '도전정신'의 그림자

 

2019년 10일 크래프톤은 자체 개발작 <미스트오버>를 출시했다. 2D 전략 로그라이크로 기대를 모았지만, 스팀에서의 평가는 '복합적'으로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다키스트 던전> 표절 의혹이 제기되고, "개발자가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여론을 조작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노 맨즈 스카이> 등 최근의 몇몇 사례에서 게이머들이 본 것처럼, 출시 이후 A/S를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낼 수 있었겠지만, 크래프톤은 그러지 않았다. 몇달 째 <미스트오버>에는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확인된다. 관련 팀을 해체했기 때문이다. 개발진이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장인정신'과 '도전정신'을 발휘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프로젝트 BB>라는 모바일 MMORPG 프로젝트가 있었다. 크래프톤이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프로젝트였다. 2019년 12월, 크래프톤은 유튜브를 통해 모바일 MMORPG <눈물을 마시는 새>를 발표했다. <프로젝트 BB>에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을 입힌 것이었다. 여론은 뜨거웠다. 가벼워 보이는 분위기와 원작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영도 작가의 독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공분을 샀다.

 

이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김경태 PD는 2020년 5월 <눈물을 마시는 새> 팀을 떠나 엑스엘게임즈로 복귀했다. 자율과 책임을 중요시하던 크래프톤이지만, 책임질 위치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다. 그렇게 팀은 사실상 공중분해 됐다.

 

<미스트오버>와 <눈물을 마시는 새> 팀은 '리부트 셀'이라는 곳으로 편제됐다. 작년 10월 크래프톤의 설명에 따르면, 리부트 셀은 "프로젝트가 중단된 구성원이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갖고 사내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을 진행할 수 있는 기간을 주고, 적절한 휴식과 자기계발을 할 여유를 주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크래프톤 사옥 내부 (출처: 크래프톤)

그러나 기자가 인터뷰한 전·현직 크래프톤 직원 중에 회사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대상자들의 계약이 변동됐다. 이들은 원래 유지하고 있던 계약 대신에 새로운 계약서를 받아들었다고 주장했다. 리부트 셀에서는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안에 새 보금자리를 찾지 못하면 근로계약이 해지됐다.

 

최대 수백명 규모가 편제됐던 리부트 셀에서 직원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고, 동료들이 하루 아침에 리부트 셀로 넘어간 것을 본 "살아남은" 직원들은 그곳에 가지 않기 위해 경계했다. 리부트 셀의 존재는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 직원들에게 리부트 셀은 압박이었고, A 스튜디오에서 B 스튜디오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수의 직원이 전환 배치 조직으로 넘어간 2020년 5월, 크래프톤은 인턴사원 공개 채용을 진행했다. 팀이 해체됐다는 이유로 리부트 셀에 갔던 직원들은 자신을 놔두고 겹치는 직군(게임디자인, 테크, 데이터, 사업 등)에 새 사람을 뽑는 것을 봐야 했다. 블라인드에서는 "쉬운 정리해고"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리부트 셀 소속이라고 해서 면접 과정에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경력이 길지 않은 직원의 경우, 이런저런 이유로 프로젝트가 공중분해된 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기존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으며 아무런 업무가 주어지지 않는 공간에 배치됐다.

 

전환배치에 성공한 사람도, 크래프톤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살아남은 스튜디오, 개발팀 입장에서도 무리한 T/O를 만들어서 리부트 셀에 들어간 인력을 무작정 구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크래프톤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 현업자는 "리부트 셀은 근로조건 불이익이라 개인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제도지만, 사실상 거절할 수 없어 보인다"고 첨언했다.

 

 

# 연합체의 조직문화는 어떻게 작동했나?

 

리부트 셀에서 혼란의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이 많아지는 동안, 크래프톤의 연합체 구성은 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다음은 본지가 2018년 당시 블루홀과 나눈 인터뷰다.

 

디스이즈게임: 연합 내 개발사가 개발력을 합쳐 게임을 개발한다고 했다. 그런데 개발사 마다 규모, 퍼포먼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의견 조율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조민형 블루홀 비전 랩 실장: 블루홀의 조직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나도 와서 독특하다고 생각한 부분인데, 지위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게재하고, 탑다운 방식으로 일하지 않더라. 의견을 나누는 도중 충돌이나 대립이 있을 수도 있지만, 최대한 투명하게 오픈하고 과정을 진행하는 구조라 그만큼 이해, 조율하는 시간이 빠른 것 같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어떤 합의점을 찾을지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 잡혔다.

 

연합사 간 의견 조율도 위와 마찬가지다. 크래프톤 연합은 개발사의 개발 리더십을 존중하고, 지향하는 바를 지원할 것이다. 물론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점검 과정도 있고 토론이 자유롭게 진행되기 때문에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직 규모에 따라 강점과 약점이 저마다 다를 것이다. 연합은 A, B, C가 있을 때 A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B와 C가 돕는 구조다. 인력적인 부분까지도 지원, 보완해서 메꾸기도 하고. (2018년 11월 17일 인터뷰 中)

  

그로부터 3년 뒤, 기자가 만난 개발 일선의 인터뷰이들은 각각의 스튜디오에서 '토론'과 '보완'이 '자유롭게' 오갔다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각의 스튜디오가 각자도생의 길을 걸은 쪽에 가깝다고 증언이 주를 이뤘다.

 

이쯤에서 이해를 위해 크래프톤의 구조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래프톤은 블루홀, 펍지, 라이징윙스 등 여러 개발 조직의 연합체다. 스튜디오의 연합 브랜드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크래프톤의 옛 이름은 블루홀이었다. 지금 크래프톤 내부의 블루홀은 MMORPG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하우스 스튜디오다. 

 

2018년 11월, 설립 당시의 문장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국내외 우수한 개발사를 연합에 합류시키고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었다. 펍지, 스콜, 피닉스, 레드사하라, 딜루젼 등 7개의 산하 스튜디오로 독립적으로 게임을 개발하기로 했다.

 

2018년 '크래프톤' 연합에 소속된 7개 연합사

 

그리고 2019년, <데드 스페이스> 프랜차이즈로 유명한 글렌 스코필드가 펍지에 합류, 캘리포니아에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SDS)를 세웠다. 이후 크래프톤이 통합 기업 시스템을 표방하며 펍지, 펍지랩스, 펍지웍스를 합병하면서 하나의 법인이 됐다. 이에 따라서 SDS도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로 볼 수 있다. SDS는 지난 게임어워즈에서 신작 <칼리스토 프로토콜>을 발표했다.

 

2021년 2월, 크래프톤에는 블루홀, 펍지, 라이징윙스, 그리고 미국의 SDS가 남아있다. 레드사하라와 엔매스가 연합을 떠나거나 해체한 과정 등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타임라인을 그릴 수 있다. 

 

2020년 2월 5일

<테라M>, <테라오리진>의 스콜 폐업 결정. 직원들은 6개월치 월급 받고 퇴사. 3월, 스콜 파산선고.

 

2020년 8월 18일

북미 지사 엔매스 사업 중단 발표.

 

2020년 11월

<불멸의 전사> 레드사하라 정리 수순.

 

2020년 12월 1일

크래프톤, 펍지주식회사 흡수합병.

 

2020년 12월 9일

피닉스와 딜루젼 스튜디오, 라이징윙스로 통합.

  

이렇게 작년 크래프톤에는 적지 않은 스튜디오의 정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직원들이 후술할 전환배치 조직 '리부트 셀'로 이동하거나 회사를 떠나는 등 불안정한 시간을 보낸 것이 확인된다. 자율과 책임을 강조한 독립 스튜디오 체제는 앞서 개별 프로젝트 사례에서 살펴본 것처럼, 빠르게 정리됐다. 특정 연합이 타 연합을 지원해서 '윈-윈'의 그림을 만들었다고 답변한 인터뷰이는 없었다.

 

스콜의 폐업 과정에서 장병규 의장과 박진석 스콜 대표는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장 의장은 "크래프톤의 브랜드, 자금, 조직 지원 등 공유 자원은 소중하게 사용돼야 하고, 크래프톤 경영진은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하지만 박 대표 등이 이러한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결별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게임 제작의 명가"를 표방한 크래프톤이었지만, ​사라진 스튜디오의 매출 성과는 좋지 않았다. 레드사하라는 2019년 순손실 62억 원을, 엔매스는 2020년 상반기에만 약 127억 원의 적자를 냈다. 스콜의 <테라M>과 <테라 오리진>도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라이징윙스라는 이름으로 결합하기 전 피닉스의 순손실은 4억 원, 딜루젼의 순손실은 51억 원이었다.

 

크래프톤의 2020년 반기보고서

 

지금 크래프톤에는 펍지, 블루홀, 라이징윙스, 그리고 SDS가 남아있다.

 

# 사라진 펍지의 복지... 하소연은 어디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펍지는 크래프톤에 합병되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약속했던 복지가 대폭 삭감되어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았다. 크래프톤에서 가장 잘 나가는 브랜드를 가진 펍지였지만, 자꾸만 열악해져만 가는 노동환경은 직원들을 불안하게 했다.

 

작년 7월, 고용노동부는 펍지를 '2020년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에 선정했다. 전년 대비 159% 높은 고용 증가율을 달성했음은 물론 전 직원 중 98% 이상이 정규직으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동비 지원, 전 직원 해외 인센티브 트립 지원 등의 복지도 '일자리 으뜸기업'의 선정 요인이었다. 

 

일자리 으뜸기업 인증식에 참가한 정세균 국무총리와 조웅희 펍지주식회사 COO

 

지난 11월, 크래프톤의 펍지 합병 소식과 함께 장병규 의장은 사원들에게 메일을 보낸다. 월 10만 원씩 지원하던 운동비의 신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것. 장 의장은 "어뷰징 이슈가 심각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펍지 직원들은 이러한 폐지 내용에 대한 공지를 사전에 받지 못했으며, 의견 수렴을 할 기회도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연 1회 전 직원 인센티브 트립의 경우 현재는 사라졌는데, 단기성 보상금을 제공한 뒤에 없어졌다. 해당 트립의 코스는 회사에서 만들어 주기도 하고, 각자 작성할 수도 있는데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얼마 썼는지를 전부 회사에 기록해서 제출하게 되어있다.

 

"조건이 이런데 어뷰징의 소지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한 직원은 원래 있던 복지의 일방적 제거로 당혹감을 나타냈다. 장 의장은 이후 인센티브 풀을 새로 책정해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펍지 직원들이 알고 있는 것은 '인센티브 트립이 없어졌다'는 사실 외에 없다.

 

블루홀은 판교에, 펍지는 서초에 사옥이 있다. 크래프톤은 최근 추가로 신사옥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출근지가 바뀐 직원이 여럿 있다. 판교의 어린이집 문제, 출퇴근 시간 연장 문제를 호소하는 직원들이 있었는데, 회사는 현재 사무실 근거리 30분 안에 있는 주택에 한해 3천만 원의 보증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지금, 보증금 지원 제도의 실효성을 긍정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장 의장은 "관련 내용을 적정한 시점에 알려드릴 것"이라고 공지했다. 

 

펍지를 비롯한 크래프톤의 직원들은 각종 문제점이나 불만 사항을 사내 채널을 통해 개진하는 대신, 블라인드에서 이야기하거나 기자에게 익명으로 전하고 있다. 왜 그럴까? 크래프톤 내부에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장병규 의장과 김창한 대표가 사내 각종 이슈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가 있다.

 

크래프톤 본사 카페에서 진행하며, 펍지 구성원들은 온라인으로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여기에 만족을 드러내는 직원은 적었다. "익명을 허용하고 질문을 받았을 때는 에둘러 답하고 이것이 반복되자 실명만 질문을 받는다"라고 답변한 현직 직원이 있었는데, 각종 복지 삭감에 대해서 기명으로 불만을 표출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펍지의 축소된 인센티브 규모에 대해서 "보상에 대해서는 아직 불만이 없다. 인센티브나 연봉 협상 때 내 노고를 인정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낸 직원도 있었다. 해당 직원과 인터뷰를 진행한 지 며칠 뒤, 크래프톤은 블루홀 스튜디오와 법인 통합에 기여한 인사, 법무 등의 직군에 일회성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펍지 직원들은 인센티브 지급에서 제외됐다.

 

2017년 12월 촬영된 펍지 사옥 내부 

 

 

# "그곳은 지옥이었다" 전 엘리온 개발자의 고백


<엘리온>은 크래프톤의 블루홀이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PC MMORPG다. 작년 12월 론칭했는데, 유료 요금제를 채택했다. 이용권의 요금은 9,900원.

 


과거 <엘리온>의 이름은 <에어>였다. 2017년 지스타 쇼케이스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에어>는 두 번의 CBT를 거쳐 2020년 4월 그 이름을 변경했다. 공중전이 중심이었던 <에어>는 <엘리온>이 되면서 필드 전투의 추가 등의 개편을 단행했다. 평균적으로 MMORPG 개발에는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데, 게임의 방향성을 크게 틀면서 목표 론칭을 위해 강도 높은 크런치 모드에 들어갔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한 퇴사자는 "그곳(<에어> 개발실)은 지옥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개월 단위의 크런치 모드는 물론 "너의 입지가 위험하다"거나 "너가 잘 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발언을 들어서 심적으로 곤란함을 겪은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가스라이팅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에어>, <엘리온> 개발실​의 PD가 팀장에게, 팀장이 소속 직원에게 업무에 대한 압박을 줬고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러한 압박은 론칭 이후 8주차 업데이트까지 계속됐다. 응답자 중 한 명은 "무리한 업무 요청 및 무분별한 업무 지시 때문에 오랜 기간 개발했음에도 (게임의) 퀄리티가 갖춰지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A팀의 업무를 B팀으로 넘기면서 경쟁 심리를 조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또 해당 개발실에는 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구성원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중에는 "가방에 심전도기를 달고 다니면서 일한 직원", "체중이 30kg 넘게 빠진 사람",  "눈에 문제가 온 분" 등의 사례가 제시되었다. 단, 전현직 구성원에 대한 건강 정보에 관한 구체적인 경위 및 증거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살인적인 스케쥴 및 분위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증언뿐이었다.

 

아직 크래프톤 블루홀에 남아있는 한 직원은 "<엘리온>의 론칭을 본 것밖에 만족할 것이 없다"라고 전했다. 지난 2월 8일 공개된 카카오게임즈의 IR 자료에 따르면, <엘리온>은 출시 한 달 동안 약 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 "실적발표 기사가 보기 싫다"

 

블라인드와 직접 인터뷰 등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는 것이 하나 있다. 회사의 빛나는 실적 발표에 비해서 본인들의 처우는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지난 상반기 크래프톤은 8,872억 원의 매출과 5,13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반기 실적을 공개한 게임사 중 넥슨의 뒤를 잇는 2위의 성과다. 

 

최근 크래프톤을 수식하는 말로는 'IPO 대어'가 있다. 크래프톤은 올해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래프톤 주식은 현재 장외에서 주당 160만~180만 원 사이에 거래 중이다. 작년 9월 보고된 크래프톤의 대주주는 장병규 의장(17.4%)이다. 텐센트는 '이미지 프레임 인베스트먼트'라는 법인을 통해 1%의 지분 차이로 회사의 2대 주주(16.4%)에 올랐다.

 

한 응답자는 기자에게 "실적발표 기사를 보기 싫다"고 답변했다.

 

크래프톤의 2020년 상반기 보고서

구체적인 숫자의 내용을 살펴보면, 회사가 거두고 있는 대부분의 수익은 <배틀그라운드>(배그) 관련으로 보인다. 여러 스튜디오가 적자를 거둔 가운데 수년간 회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배그> IP의 힘이 컸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 한국, 일본 지역을 제외한 <배그> PC와 콘솔 실적은 대체로 정체, 소폭 감소세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배그 모바일>이다. 크래프톤의 상반기 매출 80%에 해당하는 7,108억 원은 모바일에서 나왔다. <테라> 류의 부진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배그 모바일>과 저사양 스마트폰도 플레이 가능한 <배그 모바일 라이트>가 이끈 성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크래프톤의 아시아 매출 비중은 86.8%다.

 

펍지가 <배그 모바일>을 퍼블리싱하는 지역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나머지 해외 퍼블리싱은 중국의 텐센트가 맡는 상황이다. 또 공식적으로 <배그 모바일>은 원만한 합의에 따라서 중국에서 서비스 중이지 않다. <화평정영>이라는 이름의 펍지와는 무관한 게임이 서비스 중일 뿐이다. 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크래프톤의 공시 매출액을 설명하려면 "<화평정영>의 로열티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결국 크래프톤의 성과는 <배그> IP 라이선스고, 대부분 모바일 분야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계산은 어렵지 않지만, 보도자료에는 빠져있다. 장병규 의장은 실제로 "펍지 모바일, e스포츠 등의 부서 등이 텐센트와 긴밀하고 협업하고 있기에 우리의 기여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크지 않다는 점은 공감할 것"이라는 내용의 서신을 직원에게 보냈다. 이에 따라서 앞으로도 인센티브 규모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게 구성원의 해석이다.

 

밖으로 "넥슨의 뒤를 잇는 매출액"이 크래프톤의 성과로 홍보되지만, 안에서는 그 성과가 연합 개발사 구성원의 것으로 이해되지는 않는 괴리 속에서, 크래프톤 직원들은 오늘도 포괄임금제와 크런치 모드를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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